[고임표 감독의 재미있는 편집이야기] 이명세-민병천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

입력 : 2016-09-04 19:26:36 수정 : 2016-09-05 09: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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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이 다가오면 필자는 같은 시즌에 편집하고 같은 날 개봉했던 두 영화에 대한 흥미진진한 추억을 떠올리며 피식 미소짓곤 한다.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린다는 여름 성수기 속에 개봉된 소위 '한국형 블록버스터' 2편이 내 손을 거쳐 극장에 걸렸다면 그 짜릿한 흥분은 어느 것에 견주어도 비교할 바가 안된다. 그 주인공은 '유령과 '인정사정 볼 것 없다'란 영화다. 

때는 1999년. IMF 망령이 아직도 위세를 떨치는 한편 밀레니움으로 포장돼 새천년에 대한 희망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그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 '유령', 한국영화 제작시스템 바꾼 기념비적 작품

먼저 '유령', 이 작품은 일신창업투자사가 투자하고 우노필름에서 제작한 영화다. 최민수 정우성이 주연을 맡은 한국 최초의 핵잠수함 액션 스릴러물로 빚어냈는데 흥행 여부을 떠나 제작단계부터 숱한 화제를 모았다.

메가폰은 신인 민병천 감독이 잡았다. 신예에게 연출을 맡겼음에도 당시로선 상상을 뛰어넘는 거액의 제작비를 투입했고, 긴 제작기간, 미니어쳐를 이용한 특수촬영과 CG(컴퓨터그래픽)이 동원됐다. 여기에 실감나는 수조 세트와 실내 잠수함 모형, 그리고 엄청난 양의 필름 등 기존 한국영화 제작환경을 완전히 바꾼,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사실 이전까지 한국영화는  3개월에서 길어야 5개월이면 촬영을 마쳤다. 헌데 '유령'은 1998년 여름에 시작해 이듬해인 1999년 초여름까지 약 10개월 가량 촬영했으니 종전보다 두배이상 소요됐다. 이어 후반작업을 거쳐 그 해 7월31일 개봉했다.

고생한 보람은 수상의 즐거움으로 이어졌다. 이 영화는 제37회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신인감독상을 비롯한 6개 부문을 휩쓸었고, 제20회 청룡영화상에선 기술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인정사정 볼것없다'. 충무로의 승부사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가 투자하고 태원영화사가 제작한 작품이다. 이명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박중훈 안성기 장동건 최지우가 주연을 맡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의 섬세한 감각이 가미된 액션 영화다.

영화는 1998년 말 촬영에 들어가 이듬해인 1999년 7월초까지 촬영했다.그리고 짧은 후반작업을 거쳐 같은해 7월31일 선보였다. 그해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조연상, 대종상제 촬영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대상인 에르메스상을 품에 안기도 했다.

 ■ 동시 편집, 동시 개봉 '짓궂은 운명의 장난?'
 
필자는 두 영화와 끊기 힘든 인연을 맺었다. 그 인연이란 시차를 두긴 했지만 두 영화를 같은 해 비슷한 시기에 편집하고 같은 날 개봉한 것이다.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할까. 자식과 같은 영화지만 어느 작품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참으로 난처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두 작품 중 '유령'이 먼저 크랭크인했다. 그런데 핵잠수함의 특수촬영과 누구도 해보지 않은 잠수함 내부의 세트,그리고 당초에는 생각지 못하게 많은 양의 수중촬영 등으로 기간은 늘어나고 제작비도 예상보다 넘기 시작했다. 스테프들의 불만도 이만저만한게 아니었다. 

요즘과는 달리 당시 모든 스테프 계약서의 용역기간은 촬영부터 개봉까지다. 하지만 이처럼 제작기간이 정처없이 길어지자 아무리 일을 열심히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충무로 사람들이라 해도 곳곳에서 불평을 쏟아 놓곤 했다. 필자 역시 편집을 의뢰 받았을 때 개봉 시기는 99년초인 신정 또는 구정 시즌으로 전해 들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1998년 겨울에 촬영을 시작했고 1999년 여름 방학때 개봉할거란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래서 두 영화의 개봉시기가 겹칠 것이라곤 꿈에서 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제작사 각각 필자에게 시간차를 두고 편집을 의뢰한 것이고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작업을 진행했다.

민병천 감독과 달리 이명세 감독과는 구면이었다. 첫 번째 인연은 필자가 영화편집실 조수 때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지독한 사랑'을 편집하며 맺었다. 그래서 그의 연출 스타일 또한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두 번째 인연은 디지털 편집과 관련이 있다. 1997년부터 디지털 편집이 충무로에서 본격 시작되자 이듬해 이 감독이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 때만해도 감독이나 제작자를 포함한 많은 영화인들은 디지털 편집에 대해 사실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이 감독이 필자에게 디지털 편집 효과와 방법을 설명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이틀에 걸쳐서 설명해 주었는데 이후 이를 토대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콘티를 짜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 감독이 콘티 작업 전, 새로운 기계에 대한 치밀한 정보로 연출에 이용한다는 것은 당시로선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유령'을 연출한 민 감독에 대해선 좀 생소했다. 대학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했고 CG합성과 특수촬영에 귀재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신인이기에 일하면서 부딪쳐 보기로 했다. '유령'은 일정기간의 촬영하고 중간에 편집을 미리 했고  편집된 그림을 현장에서 보고 수정 혹은 보안할 점을 점검하며 촬영을 진행했다. 

아무튼 '처음' '최초'란 수식어가 암시하듯 '유령'은 곳곳에서 불리한 여건을 안고 있어 촬영이 더디게 진행됐다.그럼에도 미리 편집해놓은 장면들을 잘 이어붙여서 촬영이 마무리되고 오래지 않은 그해 6월초에 편집을 마칠 수 있었다.

 ■ '이명세가 예술한다' 충무로에 전해진 이상한 풍문

두 편의 영화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적지 않다. 먼저 '유령'. 메가폰을 잡은 민 감독은 이 작품을 마치고 곧바로 드라마를 찍기로 했다. 김종학프로덕션에서 제작하고 SBS에서 1999년7월12일부터 방송하는 장동건 김민종 명세빈 주연의 드라마 `고스트'가 바로 그것. 하지만 촬영이 늦어지고 제작기간이 길어지자 드라마 연출계약을 맺은 그도 좌불안석이다. 

실제로 그는 `유령' 촬영을 마치고 1, 2차 편집 이후로는 더 이상 참여하지 못했다. 편집과정에서 영화의 주인인 감독이 빠진 셈이다. 대신 제작자와 친한 감독, 프로듀셔 등이 동참해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사실 중도에 드라마쪽으로 떠나야 했던 이유는 민 감독도 편집이 싫어서가 아니라 '유령' 제작기간이 길어진 것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그는 귀신이 나오는 드라마 '고스트'의 특수촬영과 CG작업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아 TV 제작사와 사전 계약을 맺었으니 그를 마냥 잡아 둘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유령'은 워낙 탄탄한 연출과 나무랄데 없는 특수효과로 잘 제작돼 있었고 필자가 사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작업을 했기에 순조롭게 편집을 마칠 수 있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유령'에 비해 더욱 풍성한 숨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촬영을 시작하고 나자 충무로 주변에선 이명세 감독이 소위 '예술을 한다'는 부정적 소문이 나돌았다. 속된 말로 '헛질한다'는 것. 그 좋은 본보기로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인 극후반 안성기와 박중훈의 탄광 격투신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잘 찍은 명장면이다. 

하지만 이만한 풍문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이 영화를 찍을 때 계절은 한겨울이었고, 장소는 춥기로 유명한 강원도 철암 탄광이었다. 한 밤에 비 효과를 내기 위해 연신 물을 뿌리고 강풍기로 바람을 만들었다. 어디 그 뿐인가. 실감나는 강풍효과를 위해 낙엽과 밀가루등 을 함께 뿌려 극한 상황을 빚어냈다.
 
체감 온도 영하40도의 극한상항에 시도때도 없이 롱테이크로 촬영을 했으니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얼마나 고생했을까?
 
또 물을 뿌리고 나면 바로 얼어버리는 석탄 범벅, 그리고 석탄차 레일이 얼어붙어 배우나 제작진들이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위험한 극한상황이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가. 밤 장면이라 하룻밤을 꼬박 새면서 촬영했지만 고작 두 컷이라고 한다. 비록 명장면이라고는 하나 그런 상황 속에서 3일 연속촬영을 했고, 이 후 어떤 장면을 찍어도 그냥 찍는 법이 없는 소위 예술혼 불타는 촬영을 하다보니 말많은 충무로에 이상한 소문이 날 법도 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촬영이 끝난 직후인 1999년 7월초 편집에 들어갔다. 지금과 달리 당시의 편집은 이렇게 촬영후 하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제작자와 감독은 여름방학 개봉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문한달도 채 남지 않은 개봉일(7월31일)이었다. 편집 녹음 음악 CG 특수촬영후 심의와 홍보마케팅까지 마쳐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래서 편집도 2주 밖에 하지 못했다. 지금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하지만 정말 모두가 안간힘을 다해 완성한 작품이라 더욱 애정이 간다.

1999년 7월 31일. '유령'과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개봉일이다. 같은 날 선보일 두 작품 중 당시 관객들은 어느 것에 더 관심을 가졌을까.

필자 생각으론 개봉을 앞두곤 `유령'에 더 마음을 두었을 것 같다. 한국영화 최초의 핵잠수함 영화이고, 남성미가 넘치는 최민수 정우성이라는 당대의 거물배우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반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박중훈 안성기 장동건 최지우가 주연을 꿰찼다. 당시 충무로 주변에선 연기인생의 바닥을 달리는 박중훈이 주연이라 관객들의 호기심을 이끌기엔 미흡했다는 분위기가 감지됐고 장동건도 그땐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았다. 촬영의 소문도 온통 부정적이어서 예비관객들은 `유령'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분위기였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다음호에서 이야기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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