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억 담배 밀수 적발 알고 보니 세관 직원 결탁

입력 : 2016-09-21 23:02:45 수정 : 2016-09-25 15: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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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담배 밀수조직 총책 A(52) 씨는 알고 지내던 부산세관 공무원 이 모(48) 씨를 떠올렸다. 필리핀에서 종이필터로 신고해 들여온 뒤 부산 보세창고에 보관 중이던 밀수 국산 담배 2600보루가 적발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통관은 최종 목적지인 대구에서 하게 돼 있지만, 앞서 같은 사업자명으로 밀수입한 검은콩이 적발된 터라 이번 밀수 담배도 검사 대상이 될 위험이 컸다.

A 씨는 관세사 사무실 직원 B(54) 씨를 통해 이 씨에게 보세창고에서 밀수 담배를 빼돌려 줄 것을 청탁했다. 수입물품 검수 업무를 담당하던 이 씨는 보세창고 직원 C(37) 씨에게 담배 반출을 도와주도록 지시했고, C 씨는 공휴일에 A 씨 일당이 미리 준비한 종이필터와 창고 안 밀수 담배를 남몰래 바꿔치기하도록 도왔다.

보세창고 안에서 바꿔치기하거나
컨테이너 이동 중 빼돌리는 수법
필리핀서 2년간 11만 보루 밀수입
검찰, 공무원 포함 5명 구속 기소


부산지검 외사부(부장검사 김도형)는 2014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10차례에 걸쳐 국산 담배 11만 보루(시가 33억 원어치)를 밀수입한 일당을 적발하고 A 씨 등 조직원 3명, 금품을 받고 이들을 도운 부산세관 7급 공무원 이 씨와 B 씨 등 총 5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또 범행에 가담한 보세창고 직원과 운송기사, 국내 판매책 등 3명은 불구속 기소하고, 해외 공급책 1명은 기소 중지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씨는 2014년 5월 앞으로 담배 밀수를 위해 각종 편의를 제공해 달라는 명목으로 400만 원(뇌물수수), 이때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담배 바꿔치기를 돕는 등 직무상 부정한 행위의 대가로 1300만 원(부정처사후수뢰) 등 A 씨로부터 직접 또는 B 씨를 통해 도합 17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이 씨는 세관의 감시를 피하기 쉬운 방법을 일러주는 등 2013년부터 A 씨와 유착 관계를 맺어 왔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A 씨 일당의 나머지 밀수는 실제 통관이 이루어지는 대구 보세창고로 이동하는 도중에 보세운송기사가 사전에 약속한 공터 등으로 가서 종이필터나 원목의자 같은 신고 품목으로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이루어졌다. 필리핀에서 국내 시중가의 절반 가격인 면세가로 담배를 들여오는 공급책이 2명, 국내 판매책이 2명이었고, 보세운송기사 1명도 사실상 한패로 끌어들이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이번 수사는 부산세관이 올해 6월 7만 7000보루를 밀수입한 혐의(관세법 위반)로 A 씨 등 조직원 2명을 구속하고, 보세운송기사를 불구속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이들을 송치 받아 수사하는 과정에서 부산세관 공무원과 보세창고 직원이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밝혀내고, 공범 3명을 추가로 적발하면서 공무원까지 결탁한 총 11만 보루의 담배 밀수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부산지검 윤대진 2차장검사는 "보세창고 반출입 과정에서 물품을 바꿔치기할 수 있는 허술한 제도를 악용해 2년 넘게 담배를 밀수한 조직 전체를 적발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탈부착이 쉽지 않은 홀로그램 스티커 부착과 보세운송기사 관리 등 제도 개선 방안을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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