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578> 낙동강 에코트레일 17. 밀양 수산교~양산 물금취수장

입력 : 2016-11-30 19:34:30 수정 : 2016-12-07 15: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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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머금고 흐르는 겨울 강

낙동강 솔뫼생태공원 옆으로 깊은 강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 자전거 길을 버리고 찾아 들어간 흙길은 푹신푹신하여 정겨웠다. 곧 비를 몰고 올 하늘이 강과 어우러져 극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새벽 공기는 차갑다. 둑길을 걸어가는 사람 모습이 마치 힘차게 선로를 달리는 증기기관차 같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가야 할 길이 멀어 아침도 먹지 않고 나선 참이었다. 낙동강이 서리 내린 머리를 털어내는지 물안개가 천천히 피어오른다. 고요하다. 어쩌면 숨죽인 것 같아 강에 돌멩이 하나 던지려다 생각을 접는다. 침묵은 막히고 할퀸 상처를 속으로 삭이면서 바다로 향한 꿈을 놓지 않는 강의 인내. 수산에서 한껏 성숙해진 낙동강이다.

유등마을 대산미술관 멋진 벽화
솔뫼공원 물억새와 소나무 조화
요산의 '수라도' 만나는 화제천
4대강 공사 상흔 곳곳 오염 흔적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낙동강 에코트레일 17구간은 밀양시 하남읍 수산교에서 시작한다. 강변에 솟은 남수정(攬秀亭)의 배웅을 받으며 천천히 둑길을 따라 아래로 간다. 수산 오일장 터는 텅 비어 있다. 곧 학생들이 등교할 동명중학교는 교정의 커다란 느티나무와 벚나무가 먼저 나와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수산교에서 시작해 하남체육공원을 지나 수산대교~대산문화체육공원~유등마을~솔뫼생태공원~화포천~모정 고개~생림오토캠핑장~낙동강 레일파크~삼랑진교~낙동대교~처자교~작원관 터~작원잔도(밀양·양산 경계)~가야진사~원동역~자전거정비소~화제석교비~물금취수장까지 38㎞를 11시간 25분을 걸어 마쳤다.

수산대교를 건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은 묵묵히 아래로 흐르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얼굴이다. 여기서부터 낙동강은 특히 김해와 양산, 부산 시민의 생명수가 된다. 하지만, 여울을 만나 풍부한 산소를 머금지 못하고 오히려 보에 오래 갇혔다 겨우 풀려난 강물이라 안쓰럽다.

대산문화체육공원엔 야구장 등 시설물이 많이 있다. 넓은 공원은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적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공원길이 좋아 굳이 둑으로 난 자전거 길을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공원을 맘껏 누비며 아침을 맞는다. 몽골 초원 같은 드넓은 곳을 걸으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대천천네트워크 윤명희 국장이 미리 유청마을 입구에서 식당을 찾아보았으나 차량으로도 사방 15분 이내엔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간식으로 아침을 때우기로 했다. 각자의 가방에서 과일 빵 음료 사탕이 나왔다. 아침을 그렇게 해결했다.

■유비무환을 되새기다

유등마을을 지날 때 대산미술관에서 그린 멋진 벽화를 보았다. 유등배수장에서 둔치로 다시 내려선다. 솔뫼생태공원이다. 공원 풍광은 아름다웠다. 물억새와 군데군데 서 있는 소나무는 묘한 조화를 이뤘다. 이국적인 풍경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강 쪽으로 바싹 붙어 걸었다. 포장되지 않은 원시의 길이라 푹신하다. 그런데 함께 걷던 하천살리기운동본부 강호열 사무처장이 오염 현장을 발견했다. 오래전 4대강 공사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모래채취선에서 기름이 새 강을 오염시킨 것이다. 관계자들이 나와 처리하고는 있었지만, 한번 발을 잘못 들인 4대강 공사는 아직 강을 괴롭히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공원에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도 나무 대부분이 말라 죽어, 차라리 고사목 길이라 불러야 할 정도였다. 낙향한 대통령이 환경정화 활동을 한 화포천에서 잠시 쉰 뒤 모정 고개를 넘는다. 고개를 넘은 뒤 폐 선로를 따라 삼랑진교로 간다. 생림오토캠핑장에는 평일인데도 텐트 몇 개가 있었고, 폐 선로 끝에는 레일파크가 조성돼 레일바이크를 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삼랑진교를 건너 메기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은 뒤 가랑비가 내리는 길을 다시 걷는다. 우곡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처자교 터가 있다. 조선 시대 영남대로에 있었던 예쁜 무지개다리다. 지금은 사진만 남았을 뿐 원형 훼손을 우려해 땅에 묻어두었다고 한다. 고개가 갸웃해진다. 처자교는 작원관 근처에 살던 스님이 사모하던 처자와 다리 놓는 내기를 했는데 그때 처자가 만든 다리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작원관 입구를 지나는데 정자 현판 자리에 누군가 손글씨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써 놓았다. 작원관은 임진왜란 때 왜군 1만 8000명에 맞선 조선군 300명이 장렬하게 전사한 곳이다.

■옛길의 자취를 따라서

삼랑진교는 겨우 차 한 대가 지날 정도로 좁다.
낙동강 벼랑을 따라 길을 낸 작원잔도가 일부나마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부산에서 한양으로 가는 영남대로로 수많은 사연과 물자가 이곳을 넘나들었으리라. 석축과 기초석이 온전한 것이 고맙다.

작원잔도를 지나면서 밀양을 벗어나 양산에 접어들었다. 부산과 직접 이웃하고 있는 도시가 양산이니 이제 다 왔다는 기분이 든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사뭇 비장해진다.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하며 가야진사에 도착했다. 옛 가야시대부터 나루터 신을 모신 곳으로 매년 5월 낙동강 용신에게 가야진용신제를 봉행한다. 강 건너 산은 용 머리를 닮은 용산.

원동천을 지나니 경부선 철로 아래에 원동역으로 가는 굴다리가 있다. 도토리묵을 맛있게 내놓는 식당이 있다고 들었는데 시간에 쫓겨 지나쳐야 했다. 화제천엔 요산 김정한 선생의 소설 '수라도'의 무대가 된 인근 마을과 지명을 안내해 놓았다. '수라도'는 일제와 광복,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수난을 당한 한 집안 이야기다. 작품 속 공간과 이 일대 실제 공간이 일치한다고 했다.

짧은 해가 벌써 서산으로 숨어버렸다. 주위는 어두워졌지만, 멀리 물금읍과 호포의 불빛이 이정표가 되었다. 황산잔도 옆을 따라 강 위에 놓인 덱을 걸어 낙동강물문화관에 도착한다. 옛 취수장을 활용해 만든 곳이다. 물금취수장에서 긴 걸음을 멈춘다. 문의:황계복 산행대장 010-3887-4155. 라이프부 051-461-4094.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취재 협조=낙동강유역환경청
▲ 낙동강 에코트레일 17구간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낙동강 에코트레일 17구간 구글어스 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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