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받을 일도, 반성해야 할 일도 많았던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해였지요. 그렇지만 교육이 나라의 미래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한태식(보광) 동국대 총장은 19일 어수선한 시국인데 올 한해를 어떻게 보냈느냐는 질문에 상아탑의 어른답게 '교육'을 으뜸으로 내세우며 이같이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혼란스러운 시국 상황에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참사람 열린교육'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기르고, 시대정신과 지식사회를 선도하는 '대학다운 대학'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부산일보 비에스투데이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동국대에서 한 총장을 만나 한해를 되돌아보고 내년 계획을 들어보는 송구영신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한 총장은 2002년부터 연거푸 선거에 나섰지만 3차례 고배를 마시고 4번 만에 당선된 그야말로 '3전4기'(三顚四起)의 주인공으로 어느 덧 취임 20개월을 맞았다.
◆ 소위 '4수생 총장'인데 역설적으로 말하면 `준비된 총장'이다. 취임 이후 곧바로 '비전 2020'을 발표했는데
- 네 번째 도전 끝에 총장이 됐는데 그게 좋은 약이 됐다. 지난 10 여 년 간 총장이 되어 학교를 발전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총장이 되자마자 바로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일종의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그 좋은 본보기가 바로 `비전 2020'이다.
◆ `비전 2020'을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면
- 한마디로 세계 중심대학이 되기 위한 동국대의 새로운 발전전략이다. 구체적으로 ▲참사람 열린교육 글로벌 연구자 양성 ▲대학본연의 가치창출 ▲재정확충과 건실한 운영 ▲신바람 나는 캠퍼스 구축 ▲병원 경영 효율화 등 5대 전략이다. 이 중에서도 재정 건전성 확보는 모든 사업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재임 중 부채를 최대한 줄이고 발전기금을 많이 거두려고 한다.
◆ 대학 운영에 있어 대부분 대학들이 채택하고 있는 `기업경영방식' 탈피를 선언했는데
- 좋은 지적이다. 지금까지 대학은 외형적 성장으로 세를 과시해 왔다. 기업의 평가방식을 적용해 교수와 직원을 실적 위주로 평가하고 결과중심의 평가체계 등 무한경쟁을 유도해 대학의 본질을 왜곡해 왔다.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대신 동국대는 대학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화려한 건물보다는 알찬 교육환경, 다양한 지식의 융복합 능력, 문제해결형 인재 양성 등에 주력하겠다. 또한 대학은 생산이 아닌 학문발전과 인재육성을 담당하는 기관이 아닌가. 이에 따라 구성원의 행복과 인재의 양성이라는 대학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고 `참사람 열린교육`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명품인재 육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 취임 직후 조직형태에 있어서 기업식을 따랐던 ‘본부’ 직제를 원래대로 ‘처’로 바꿨다. 이유는 내부 구성원 뿐 아니라 타 대학과의 소통에도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비서실 조직을 슬림화했다. 대학은 기업과 달라서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성원들과 최대한 많이 소통하면서 가야한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면 여러 부작용이 생긴다. 최소 10년 앞을 내다보고 대학운영과 제반 투자를 해야 질 높은 연구 성과도 낼 수 있고 경쟁력도 갖출 수 있다.
◆ 교수 평가 방법도 달라졌다는데
- 논문 실적이 적으면 승진이나 연구년 등에서 불이익을 주던 방식을 폐지키로 했다. 교수 연구년이란 일정 주기마다 1년씩 교수 업무에서 벗어나 휴식을 주는 제도인데 지금까지 연구업적이 적은 교수는 대학원 지도교수를 못 맡았다. 대학원생 제자를 못 두게 되면 이공계 교수들은 실험실 운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명적이다.
가뜩이나 연구업적이 적은 데 실험실 운영을 못하니 논문 실적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앞으로는 연구업적이 떨어진다고 `무능 교수'로 낙인찍는 평가방식은 시행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총장인 내가 학과별로 교수들을 면담하면서 더욱 연구에 매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나의 리더십은 당근과 채찍이 아니고 칭찬과 부탁이다. 지난해까지 단과대별로 진행했던 교수간담회를 올해는 학과별로 열고 있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하지만 교수들의 반응이 좋다. 총장과 교수간 소통할 수 있어 서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혁신적 조치들인데 대외적 평가는 어떠한가
- 올해 동국대는 전 세계 3천800개 대학을 대상으로 한 `2016 QS세계대학평가'에서 국내 14위, 세계 순위 444위에 올랐다. 이번 평가에서 학계평판과 교수당 학생비율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4년 연속 순위를 끌어올렸다. 2013년 601~650위 등급에 머물렀고 지난해 537위에 오른 데 이어 올해는 444위로 93계단 뛰어오르며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또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도 지난해보다 2계단 상승한 종합순위 17위, 한국경제신문의 ‘2016 이공계 대학평가'에서는 11위에 올랐다. 최근 이공계 집중육성과 조직적인 취·창업지원 프로그램에 힘입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 국책사업을 잇따라 수주하고 중점대학에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 그렇다. 지난해와 올해 중대형 국책사업을 잇따라 수주했다. 평가에 연연하기보다는 대학 경쟁력의 본질을 생각했다. 대학다운 대학을 만들기 위해 ‘교육’에 집중해 학부교육선도대학(ACE)사업에 선정돼 ‘잘 가르치는 대학’으로 인정받았다. 학생의 사회진출을 위해 융복합 인재 양성에 주력했더니 소프트웨어중심대학에 선정, 6년간 106억을 지원받게 됐다.
교육기회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 미래교육의 트렌드인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책사업을 수주하고 중점대학에 선정되는 비결은 대학 본연의 임무와 기본에 충실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유지해 나갈 생각이다.
◆ 사법과 행정 등 각종 국가고시에서 성적도 뛰어나더라
- 맞다. 학교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에 힘입어 동국대는 각종 국가고시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사법시험에서 4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이는 전국 7위로 `법조인 양성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행정고시에 6명, 공인회계사 시험에 30명이 합격했다. 이들 성적은 전국에서 10위 안팎이다. 합격자들은 교내 고시반 출신이 대부분이며 수험생들은 모의고사, 동영상 강의, 외부강사 초청 특강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 대외협력처장 시절 기금 600억원을 모아 부속병원을 건립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재정확충에 자신감이 있다는 대목인데
- 물론이다. 올해 모금액이 230억 원을 넘어섰다. 동국대는 그동안 30만 명을 사회 각계 각층에 배출했다. 이런 동문파워와 끈끈한 네트워크는 모교발전을 위한 원동력이다. 사실 동국대는 매년 100억 원 이상의 기부금을 유치해 사립대 기부금 모금 순위가 2014년 3위, 2015년 9위 등 늘 `톱10'이다. 특히 지난달 10일 개교110주년 기념으로 마련된 후원의 밤에서 하룻밤 새 100억 원을 모금해 동국대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런 재정확충을 통해 교육인프라를 혁신할 것이다. 예컨대 오는 2020년까지 1천1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하고 서울캠퍼스에 로터스관과 108주년기념관 신축, 장충리틀야구장 부지를 확보해 교육·연구 인프라의 큰 혁신을 계획하고 있다.
◆ 올해 일부 갑질 혹은 비위 교수 문제로 적지 않은 물의를 빚었는데
- 먼저 교내외 비난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동국대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갑질, 성희롱, 연구비 횡령 등 각종 비위 교수들의 사건이 단기간 내에 집중적으로 적발돼 큰 충격을 받았다. 법인에서 이들 비위교수에 대한 징계 절차를 진행 중이다. 교내외 우려를 엄중하게 인식하여 빠르고 정확한 조사와 징계 조치를 철저히 하겠다. 과거에는 강의실 등에서 암묵적으로 넘어간 성희롱 등의 발언들은 이제 용납되지 않는다. 교수 사회도 이런 달라진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
◆ 대학 내 비리교수 적발이 인권친화적 대화문화 조성과 관련 있어 보이는데
-그렇다. 우리대학은 대학원 인권개선을 위한 지도교수 자율선택제를 시행중인데 지도교수나 학과장의 확인 없이 지도교수 변경을 가능하게 했다. 지난해 5월부터 현재까지 총 84건의 변경 신청이 접수됐다. 또 과거 학생상담센터 내 `양성평등상담소`의 성희롱이나 성폭력 업무에서 `인권' 관련 업무로 확대시킨 전담조직인 ‘인권센터’를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는 학내 인권문제에 대한 사전 예방 및 적극적 개입에 대한 의지 표명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최근 일련의 비리교수 사건이 언론에 노출된 배경에는 지난해부터 학교당국이 시행한 소위 `갑질행위 퇴출`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련의 제도 개선은 학생만이 아니라 교수의 교권과 직원의 근로권이 침해받지 않게 세심하게 추진할 방침이다.
◆ 정유년(丁酉年)인 2017년 대학 운영 방향은
- 내년 대학운영기조는 '대학다운 대학으로 내실있는 성장'에 힘을 쓸 예정이다. 또 대학 고유의 교육·연구 역량 강화에 선택과 집중을 다할 것이다. 나아가 산학협력 및 지역연계 활성화를 통한 취업이나 창업을 선도하고 '비전 2020` 실천을 위한 대학 재정 및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겠다. 더불어 질 높은 행정서비스 지원과 건전한 대학문화 조성과 확산에도 모자람이 없도록 하겠다.
그동안 대학들은 지성인을 길러내는 데만 역량을 집중했지만, 이제는 졸업생들의 먹고 살길까지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졸업생들이 취업을 못하면 대학에 등록금 반환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학생들의 진로를 고민해야 된다고 본다.
◆ 상아탑의 어른으로서 새해 덕담을 해 주신다면
- `일심동행'(一心同行)이다. 교수, 학생, 직원, 동문 등 모든 동국인이 모두 한 마음으로 함께 가자는 뜻이다. 이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동국대가 `대학다운 대학'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
<한태식(韓泰植) 총장은>
1951년 경북 경주 출생이다. 1970년 약관의 나이에 출가했고 법명은 보광(普光)이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머물던 분황사에서 수행했다. 경주고와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80년대 일본불교대학 유학 시절 교토의 한 사찰 창고에 보관돼 있던 원효대사의 '유심안락도' 필사본을 입수해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런 연유로 원효의 정토 사상을 연구했다.
이후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며 △정각원장 △대외협력처장 △불교대학장 △불교대학원장 △한국정토학회 회장 △국제전자불전협회 국제회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 5월 동국대 18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청계산 정토사 주지다.
대담 = 김호일 편집국장 tokm@busan.com
정리 = 김상혁 기자
사진 = 박찬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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