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이칸저칸] 봉준호 '옥자' 칸 최고 화제작 첫선, 아쉬운 '상영사고'

입력 : 2017-05-20 17:14:22 수정 : 2017-05-20 17: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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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제70회 칸영화제가 열리는 지중해 연안 프랑스 칸에 영화평론가 윤성은씨를 파견했다. 지난해에 이어 세계 최고의 영화축제 현장을 찾은 그는 특유의 섬세함과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주요 작품과 현지 분위기 등을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독자들의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편집자 주)

보슬비가 흩뿌리는 아침이다. 간밤에 도착한 비보(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부위원장 타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찌감치 준비를 해서 나왔다. 가져온 옷들 중 최대한 어두운 색 계열의 옷을 대충 골라 입고 나서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그토록 기다려온 `옥자'의 상영일인 19일(현지시간) 아침이 이렇게 잿빛일 줄이야. 그래도 영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뤼미에르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 수십 미터 앞부터 `옥자'의 표를 부탁하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영화제 배지가 없는 일반 관객들은 이런 식으로 티켓을 구한다. 이로써 특정 영화에 대한 관심의 척도를 가늠해 볼 수도 있는데, 봉준호 감독의 인기와 더불어 넷플릭스 배급이라는 태생은 `옥자'를 올 칸영화제 최대의 화제작으로 등극시켰음이 분명하다.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프레스 스크리닝'도 빈 자리 없이 들어찼다. 

영화 도입부에 `NETFLIX`라는 단어가 뜨자 야유하는 소리가 들렸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다. 문제는 바로 다음에 발견된 영사 사고였다. 영상과 스크린 사이즈를 맞춰놓지 않아 상단 1/5쯤이 잘려서 보이지 않았다.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른 지 7-8분쯤(?) 지나서야 상영이 중단되고 다시 불이 켜졌다. 

주최측이 사고를 수습하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런 어이 없는 실수도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하나. 영화제에 득 될 것이 없으므로 이성적으로는 `관계없다'라는 답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하필 왜?'라는 물음표도 쉽게 지워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기다렸던 `옥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음 장면을 예측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거대 기업의 횡포에 맞선 개인의 투쟁이라는 큰 줄기부터 소녀와 동물의 연대, 그녀를 돕는 선한 무리들, 히스테릭한 박사 등 설정이나 캐릭터는 익숙한데 이들이 조합되는 과정에서의 화학반응은 처음 보는 분자식을 만들어낸다. 

이 생경함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관객들에게 `옥자'는 독창적이고 즐거운 영화로 남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사실 봉준호의 전작들이 보여주었던 테마, 인물, 유머 등을 떠올려보면 그 당황스러움은 머리모양을 바꾸었을 때 처음 느끼는 어색함에 가깝다. 환경, 가족, 반자본이라는 키워드와 인물 구성 등에서 특히, `괴물'과 `설국열차'를 번갈아 떠올리게 된다. 대사에 꽂혀 있는 날선 유머 감각과 화면의 심도를 활용한 디테일 또한 여전하다.

무엇보다 미자와 옥자가 함께 등장하는 도입부, 그리고 지난한 모험의 의미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후반 10분에서 봉준호의 탁월함이 돋보인다. 여기에 생전 처음 보는 동물에 감정을 이입시키는 3초가, 얻은 것과 얻지 못한 것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1분이 있고, "밥은 먹고 다니냐"와 같은 대사처럼, 마음을 한 순간에 허물어뜨려 뜨끈뜨끈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도 담겨 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수상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고, 영화 자체 보다 배급 방식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배급 방식을 두고 수상 가능성에 대해 논쟁하는 건 뭐라고 해야 할까. 나도 물론 유죄다. 이제 다 같이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 

글 사진 =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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