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김지석과 육성인터뷰 2] '아시아 정상' 그는 신화를 썼다

입력 : 2017-05-21 16:00:00 수정 : 2017-05-21 22: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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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2009년 5월 BIFF 탄생 비화 등을 듣고자 고인과 3일간 긴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출판목적이었기에 언론 보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 인터뷰는 3회 중 2회다.

- 영화제의 성장과정에서 도움을 준 것은?
 
▲먼저 APM(아시아프로젝트마켓,옛 명칭 PPP)을 꼽을 수 있어요.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박광수 감독이었어요. 네덜란드 로테르담영화제의 비슷한 프로그램인 시네마트에 참가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거 좋다'며 제안을 했고 2회 때 세미나를 통해 붐을 조성한 뒤 3회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영화제가 오늘에 이르는데 APM이 무척 큰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영화제란 게 축제잖아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나 언론에서 영화제를 바라볼 때 어떤 시야로 보냐면 그냥 축제로 보죠. 다들 영화축제가 산업적 기능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할 때 이를 제안했던 거죠. BIFF는 그냥 축제가 아니고 산업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영화제로 전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거에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초창기 때 우리가 비경쟁과 아시아 영화에 포커스를 맞췄는데 그럼 다른 영화제와 차별화할 것은 뭔가를 고민한 것이죠. 특히 `지존' 홍콩영화제와 다를 게 뭐냐 이런 식이었는데 그래서 부분적으로 경쟁부문을 도입해 아시아 신인감독에게 '뉴커런츠' 상을 준거죠. 당시 홍콩에는 경쟁부문이 없었어요.
 
로테르담 타이거상은 전 세계가 대상인데 우린 아시아로 국한했죠. 나중에 홍콩이 경쟁부문을 만들었는데 그건 순전히 부산 때문에 그런 거에요.
 
아무튼 초창기 홍콩과 구별되는 점은 우리는 아시아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경쟁부문이 있다라는 것이었고 이후 3회 들어가면서APM을 만들면서 홍콩과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영화제로 자리를 굳히게 됐죠.
 
- 그렇다면 홍콩을 완전히 제친 것인가.

▲BIFF 위상이 이젠 크게 높아졌어요. 영화제만 놓고 보면 홍콩은 부산을 따라오기가 힘들어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홍콩이란 도시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를 꼽을 수 있죠. 홍콩은 3주 가까이 영화제를 하지만 평일 낮에는 일부를 제외하고 상영을 하지 않는데 이로 인해 집중도가 떨어지죠.

또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우리만큼 도와주지 않아요. 극장이 분산돼 있는 탓에 홍콩 전역에서 영화제를 하죠. 그 이유는 우리는 10개 스크린의 멀티플렉스를 통째로 빌릴 수 있는데 홍콩은 그게 안 되는 거죠. 여러 개 중에서 하나만 빌려주고 그래서 방법이 없는 거에요.
 
우리는 10일 동안 죽고 못 사는 축제를 하는데 거기는 시네마테크 특별 프로그램을 3주 동안 하는 느낌이죠. 이 얼마나 큰 차이입니까.
 
- 홍콩 관객들의 반응은.
 
▲모두 해봤자 10만 명도 채 안 됩니다. 작년에 집행위원장을 쇼브라더스 창립자 손녀딸인 런스웨이로 바꿨고 이를 게기로 좀 잘해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지켜봐야죠. 영화제 프로그래밍과 관련해 예를 들면 작년 우리는 월드와 인터내셔널 프리미어가 100편이 넘는데 올해 홍콩은 30편도 안되 더군요. 볼 영화가 거의 없었어요.
 
- 홍콩 마켓은 잘 되는 거 아닌가.
 
▲정확하게 말하면 홍콩필름마트죠. 사실 영화제와는 아무 상관 없어요. 홍콩무역발전국에서 주최를 하고 개최 시기도 6월이에요. 영화제는 3월에 열고 주최도 홍콩소사이어티라는 법인체에서 맡아요. 그런데 부산에 하도 밀리니까 안 되겠다 해서 3월로 합친 것인데 조직은 그냥 놔두고 날짜만 같이 하는 겁니다.

홍콩보다는 도쿄영화제가 더 문제죠. 도쿄는 약 한 달간 콘텐츠 마켓을 여는데 만화 음반 영화를 다 합니다. 내용도 알차고 게스트도 많고 일본 정부가 공식 후원하고 있어 솔직히 우리보단 앞서죠. 우리 영화제의 경우 문화부에서 지원받아 행사를 치르는데 이것 갖고는 부족하고 경제부서에서도 영화제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 마켓은 분명 현 상황에서 우리보다 잘하고 있고 그래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죠. 특히 도쿄영화제 개최일자가 바로 우리 뒤이고 돈이 많으니까 바이어에게 방도 다 제공합니다.

- APM 도입한 이듬해인 4회 때는 한국영화 `박하사탕'을 처음 개막작으로 선정했는데.
 
▲물론 그 전에도 개막작으로 한국영화를 걸고 싶었는데 그럴 만한 작품이 없었어요. 이창동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물론 굉장히 모험이었죠. 그런데 작품이 워낙 좋았어요. 역대 영화제 중 가장 모범적 사례라고나 할까.

영화제를 하다 보면 프로그래머들에게는 시네필 같은 자세가 있어요. 지금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초창기에는 이런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물론 후회를 하죠. 예컨데 부산영화제는 `예술영화제'를 지향한다거나 그래서 수면제 같은 영화들만 튼다는 비판이죠.

물론 그게 옳은가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프로그래머의 주관도 중요하지만 이런 시네필적인 사고는 500석짜리 개막식에선 통하지만 5천석 개막식에서는 통하기 힘들어요. `박하사탕'은 드라마도 탄탄했고 예술성과 대중성도 겸비한 좋은 영화였어요.
 
- 이를 계기로 이창동 감독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참여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을 하는 게기도 됐는데.
 
▲개막작으로 내건 이듬해인 2000년 `박하사탕'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진출했어요. 사실 지금은 칸 경쟁부분에 안 가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당시엔 칸 어느 부분도 가기 힘들 때라 우리 영화제에서 개막작을 하고 칸에 가니까 마음이 뿌듯했죠. 이 감독 이름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여서 여러 가지로 행복한 케이스였죠.
 
- 5회를 넘기면서 영화제 운영이 비교적 순탄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5회 이전 운영시스템은 주먹구구식이었죠. 그래서 그 이후에는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갖춰 나갔어요. 우리가 자부하는 건 영화제 운영 표준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티켓 시스템만 하더라도 안 좋은 추억들이 많아요. 초창기 부산은행이 해주었는데 그 서버로는 도무지 감당을 못해 종종 다운되고…

그런데도 부산은행과의 관계 때문에 계속 갈 수밖에 없었고요. 시스템을 고쳐 가며 진화해나갔는데 예컨대 초청시스템은 이전엔 엑셀이 고작이었죠. 그런데 체코에서 초청 프로그램 소프트웨어를 샀는데 이를 우리에게 맞게 고쳐 쓰면서 시스템이 서서히 체계화되기 시작한 거죠.
 
이것도 한참 지나니까 한계를 드러내 지금은 더 획기적 시스템을 CJ시스템즈와 개발 중이에요. 이게 완성되면 또 영화제의 표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하면 전주 등 다른 영화제에서 갖다 쓰고 있는데 이런 표준화딘 시스템이 개발되면 장기적으로 해외에 팔 생각이에요.
 
- 해외에서 부산영화제를 배우고 있다는데 어떤 부분인가.
 
▲베트남에 드디어 영화제가 생깁니다. 약 3~4년간 준비를 했어요. 올해 홍콩에서 담당자를 만나 보니까 베트남 미디어 쪽이 중심이 돼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동안 관료제 때문에 힘들어 했는데 내년 하노이 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영화제를 열기로 했다고 하네요. 그들은 우리를 멘토로 생각해요. 3년 전에는 부산에 인턴을 보내 우리의 노하우를 배워갔을 정도에요.
 
올해 처음 출범한 일본 오키나와영화제도 우리가 조직, 운영에 관한 자료를 만들어서 줬지요. 그 때문에 김 위원장이 심사위원장으로 초청받았고 저도 VIP게스트로 다녀왔고요.
 
- 최초 상영을 뜻하는 프리미어 작품 초청이 많은데
 
▲영화제의 위상을 이야기할 때 프리미어(최초 상영)는 무척 중요한 부문이에요. 우리는 5회 이후 집중적으로 프리미어 숫자를 늘리는 노력을 기울여 왔죠. 여기서 부끄러운 고백을 하고 싶은데, 사실 초창기 우리가 `발굴'이란 표현을 쓰곤 했지만 좀 낯간지러운 대목입니다. 일부 작품은 칸, 베를린, 베니스 등 큰 영화제에서 다 상영한 건데 그저 한국에서 처음 상영한다고 `발굴이란 표현을 쓴 것이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낯 뜨거워요. 그래서 우리는 영화제가 안정 궤도에 진입한 5회 이후 프리미어 확보에 주력했지요.

- 작품이나 게스트 초청에 노하우는 있는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적 네트워크예요. 이제는 아시아 국가별로 핵심 영화인들을 모두 친구로 만들어 놨어요. 그래서 누가, 어떤 영화를 만든다는 정보가 다 들어와요. 정보가 빠르니까 초청교섭도 일찌감치 들어가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부산에 왔던 사람들이 "넌 부산에 가야 한다"고 앞장서서 홍보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게 다 초청 노하우에요. 

- 2000년 이후에는 세계 3대 영화제 집행위원장도 찾는 영화제로 발돋움 했는데 영화제 성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런 대목이 영화제 성장에 굉장히 작용했어요. 또 버라이어티, 스크린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영화잡지 기자들을 초청한 것도 주효했고요. 이젠 그들이 알아서 오고 영화제 초청작 기사도 써주니까 해외 영화인을 초청하는 데 수월해요. 사실 영화 하는 사람들은 부산영화제를 다 알아요. 예컨대 해외 영화제에 나가면 나를 무조건 찾아와 DVD를 주죠. 신작인데 부산에 초청해 달라는 겁니다. 이젠 거기까지 갔어요.
 
- 영화제가 어느 순간 불쑥 커졌는데.
 
▲영화제가 10회를 맞으면서 규모가 커졌어요. 초청작이 300편을 넘겼으니까 말입니다. 한번 키워놓으니까 쉽게 줄지 않더라고요. 이젠 좀 줄여야 합니다. 올해는 280여 편 안팎으로 초청할 계획이에요.

요즘 우리 영화제에 아시아 영화는 장, 단편 포함해서 1천 200편 정도 들어오는데 이를 보고 80~90편 가량의 장편을 골라내죠. 약 10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고 그런 면에서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 반면 과거에 비해 '한국영화 발굴'이란 측면에서 소홀했다는 비판도 받는데.
 
▲ 10년여 전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요. 우리나라 소위 톱 감독들은 이젠 3대 영화제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이게 현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는데, 상대적으로 언론에서 그렇게 보지 않는 이유도 있어요.
 
그렇다고 부산영화제가 가능성 있는 감독을 놓치느냐?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특출한 재능 있는 감독을 놓치면 문제인데 아직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우리 영화제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와 관련이 있죠. 이 역시 언론에서 놓치는 부문인데 영화제가 규모에 따라 목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BIFF는 세계 정상급 영화제가 목표인데 그래서 요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 중입니다. 새로운 방향, 즉 산업적 역량을 얼마나,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놓고 조만간 중요한 화두를 내놓을 예정이에요.
 
- BIFF가 조직된 지 1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익숙함에서 오는 문제도 있을 수 있는데.
 

▲BIFF의 미덕이자 장점은 구성원 간 팀워크가 좋다는 것입니다. 의견 조율이 잘 되고 그래서 화합하며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죠. 또한 국내에서 우리가 처음 영화제를 출범시킨 탓에 운영 노하우가 많이 축적돼있어요. 이런 대목은 사람을 바꾼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프로그래머 역할이 진화해 왔다고 말할 수 있어요. 단순변화가 아니라는 얘기죠. 물론 이걸 어떻게 후배에게 물려주느냐 하는 것이 숙제이지만 이런 진화는 쉽지 않고 이렇게 쌓인 자산은 무척 소중한 것이죠

 김호일 선임기자 tokm@

사진은 2011년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남구 광안리에서 자정 넘어 열린 와이드앵글 파티 개막식에 참석한 고인의 모습(사진 왼쪽부터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 안병률 부위원장, 이용관 위원장,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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