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걸그룹 인재 육성 리얼리티를 표방한 Mnet '아이돌학교'가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과 차별화를 꾀하지 못하며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당초 제작진이 내세웠던 '육성', '성장'의 키워드는 냉정한 서바이벌의 세계에 묻혀버렸다.
앞서 '아이돌학교' 편성이 확정됐을때 '프로듀스101' 같은 프로그램과 다를 게 있겠냐는 시각이 주를 이뤘다. 이를 인지한 제작진은 '아이돌학개론' '칼군무의 이해' '아이돌 멘탈관리학' '발성과 호흡의 관계', '무대 위기 대처술'이라는 거창한 커리큘럼을 공개하며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동일 선상에 놓이는 것을 피하려 애썼다.
또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연습생들의 인성을 우선시 한다는 명목 하에 배우 이순재를 교장선생님으로 앉히는 독특한 포맷도 내놓았다.(첫 회 당시 입학식에 참석한 후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있는 이순재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지난 13일 방송된 '아이돌학교' 첫 회에서는 41명의 연습생이 기숙사에 입소 후 적응하는 모습을 주로 그렸다. 이 중 끝까지 살아남아 데뷔조에 뽑히는 사람은 9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첫 날 모인 학생들은 경쟁을 하기 보다는 서로 장난을 치고 친분을 쌓는 등, 그 속에서 나름의 추억을 만들었다. 첫 날부터 부담감을 가지고 자진 퇴소를 결정한 솜혜인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이때까지 '아이돌학교'의 모습은 나름 훈훈했다.
학생들은 이어진 2회 때부터 본격적으로 노래와 안무 수업을 받았다. 이후에는 냉정한 평가의 연속이었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실시간 문자 투표를 통해 나온 전체 순위를 해당 연습생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공개하며 경쟁을 부추겼다. 또 프로그램 말미에는 연습생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전체 40위부터 1위까지의 순위를 차례대로 발표한다. 화면에 뜬 자신의 순위를 즉시 접하는 연습생들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프로듀스101' 역시 매주 '국민판정단'이라는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는 참가자들은 가차 없이 내쫓곤 했다. '아이돌학교' 또한 하위권에 머무르는 학생들을 퇴소시키며 점차 인원을 줄여나간다. '프로듀스101'은 애초부터 서바이벌 형식을 표방했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성장과 육성이라는 감동적인 가치를 내건 '아이돌학교'까지 이렇게 할 필요가 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전날 방송된 3회에서는 아예 '프로듀스101'을 따라갔다. 팀을 짠 후 한 곡을 정해 시청자들 앞에서 경연을 펼치는 모습은 '프로듀스101' 시즌1과 2에서 수없이 봐왔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학생들의 담임선생님을 맡고 있는 슈퍼주니어 김희철이 "이 친구들은 아직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서투를 수도 있으니 그 점을 유념해서 봐달라"는 말을 할 때뿐이었다.
학생들은 혹독한 연습 과정을 거치면서 선생님들에게 쓴 소리도 듣고, 팀원들끼리 다투기도 한다. 이어 힘들게 무대를 마친 후 서로를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린다. 이런 장면 또한 낯이 익다. 학생들은 개인에게 부여된 점수를 전광판으로 확인하면서 울고 웃는다. 심지어 홍시우 연습생은 0점을 받기도 했다. 이를 보고 실망감에 빠진 홍시우의 표정은 처참했다. 아직 어린 나이의 그가 벌써부터 냉혹한 경쟁 사회의 쓴 맛을 본 순간이었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주 2회 방송에서는 당초 취지에 부합하는 장면도 보였다. 학생들은 총 세 번의 기회를 통해 프로그램 홍보에 쓰일 '군무' 영상을 실수 없이 완성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지만, 끈끈한 팀워크를 발휘하며 주어진 미션을 해낸 것이다. 이들은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서로를 다독이며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고, 이런 모습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그림이 나왔다. 또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때 실력이 다소 떨어지는 연습생을 옆에서 가르쳐주는 학생의 모습에서도 '경쟁'보다는 함께 가는 동료라는 느낌을 주곤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금까지 공개된 '아이돌학교'의 생활은 배경만 학교로 바뀐 '프로듀스101'의 후속편에 가깝다. 반복되는 아이돌, 오디션, 서바이벌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청자들의 의견도 늘어나고 있다.
'아이돌학교'의 연출을 맡은 신유선 PD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63 컨벤션 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프로듀스101'은 연습생이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면, 우리는 일반인이 얼마나 잘 성장해 나가는지 지켜보고 교육시켜 데뷔를 시키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는 과정이 왜 자꾸 점수로만 나타나는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김상록 기자 s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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