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야전병원 참전용사 "부산 발전 놀랍고 행복"

입력 : 2017-09-12 23:00:50 수정 : 2017-09-14 13: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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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전 부산에 처음 왔을 때는 산과 바다밖에 없었어요. 부산이 이토록 발전한 모습에 행복합니다."

12일 오전 11시 30분께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앞. 스웨덴 참전 기념비 앞에 선 참전 간호사 잉그리드 프리드(92·여) 씨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60여 년 전 학교 건물에 야전병원이 차려졌던 이곳에서 그는 환자와 부상자, 고아들을 돌봤다. 전쟁이 휩쓸고 갔던 폐허는 반세기 만에 화려한 호텔과 빌딩이 즐비한 도시로 바뀌었고, 의료봉사의 수혜자였던 나라에서 세계 각지로 인술을 베푸는 나라가 됐다.

부상자·환자·고아에 인술
한국전쟁 의료진 등 10여 명
옛 부산상고 야전병원 자리
서면 참전기념비 찾아 감격

현재 참전용사 58명 연락
자국 영화사서 다큐 제작 중


한국전쟁 당시 피란도시 부산에서 총 대신 '메스'를 들고 생명을 구했던 스웨덴 의료진(본보 지난 6월 23일자 1·4·5면 등 보도)과 유족 10여 명이 12일 부산을 찾았다.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은 전쟁이 끝난 뒤인 1957년까지 옛 부산상고(현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자리에서 부산을 지켰다.

한국전쟁 당시 스웨덴병원 참전 의료진과 그 가족들이 12일 오전 서면 롯데백화점 옆 참전기념비를 살펴보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참전 의료진의 아들 페르 니안데르(68) 씨도 이번 부산 방문에 함께 했다. 소아과 의사였던 아버지 고 요스타 니안데르 씨는 1953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어린이를 치료했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해에 태어났다"며 한국과 연관지어 자신을 소개했다. 부친이 196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일찍 가족 곁을 떠났지만, 아버지가 남긴 사진과 자녀들에게 수시로 들려준 한국 이야기는 수십년 동안 생생하게 그의 마음 속에 새겨졌다. 니안데르 씨는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을 잘 보존한 덕분에 의미 있는 사진전도 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스웨덴병원에서 위생병으로 근무한 힐딩 뢰브달(93) 씨의 기억 속에는 부산으로 모여든 전국 각지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이루며 살아가던 장면이 생생했다. 그는 "화재에 취약한 주거 환경때문에 스웨덴병원에는 유독 화상 환자가 많았다. 병원에는 화상환자와 여성 등을 위한 별도의 건물이 따로 있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스웨덴병원에서 일하다 만나 결혼한 잉아마야 마닝어(93·여) 씨 커플의 부산 시절. 에바 옐머 씨(딸) 제공
스웨덴병원에서는 '참전 커플'도 다수 탄생했다. 6개월에서 1년 남짓한 기간 부산에서 함께 근무하다가 본국으로 귀국한 뒤 결혼하는 커플들이 많았다. 딸과 함께 부산을 방문한 참전 간호사 잉아마야 마닝어(93) 씨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부산 스웨덴병원에서 남편을 만나 사랑을 키웠다. 이번 부산 방문단에 포함된 잉그리드 프리드 씨 역시 한국전쟁 때 스웨덴병원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한 '스웨덴병원 커플'이다. 마닝어 씨의 딸 에바 옐머(62) 씨는 "부모님이 부산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저도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며 빙긋 웃었다.

한국참전 스웨덴 재향군인회 회장인 카타리나 에릭손(57·여) 씨는 참전의료진인 아버지 고 잉바르 스벤손 씨의 뜻을 이어 재향군인회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에릭손 씨는 "22살의 젊은 나이에 전쟁터로 가서 의료진으로 헌신한 아버지를 존경한다"면서 "연로한 참전용사들의 모임이나 각종 행사를 맡고 있다. 아버지께서도 하늘에서 보시며 기뻐하실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한국전쟁 전후로 부산 스웨덴병원을 거친 스웨덴 참전용사는 1100여 명으로 추정된다. 현재 58명이 연락이 닿는다. 스웨덴 영화제작사 아카 필름은 내년 중순 방영을 목표로 스웨덴병원 의료진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잊지 않겠습니다(Let us never forget)'를 제작 중이다.

민소영 기자 mission@busan.com

유튜브 링크:https://youtu.be/dQX4WWtwL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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