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뜨거운 '부산항 무인자동화'] 해수부 "시대적 대세" vs 항운노조 "일자리 소멸"

입력 : 2018-03-05 19:52:38 수정 : 2018-03-06 11: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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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아닌 필수 : 해수부-아직은 시기 상조 : 항운노조

부산항에 스마트 항만 도입을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의 기싸움이 시작됐다. 지난해 5월 약 10억 달러를 투입해 아시아 최초의 완전무인자동화 터미널로 개장한 중국 칭다오항의 칭다오치엔완컨테이너터미널(QQCTN) 전경. 부산일보DB

■ 선택 아닌 필수 : 해수부

정부가 부산신항, 인천신항 등 신규 터미널을 대상으로 항만 완전무인자동화를 도입하기로 한 가운데 부산항운노조가 '지능형 자동화터미널의 항만인력 대응방안 연구'라는 연구용역을 근거로 속도조절을 나서면서 '부산신항 항만 완전무인자동화'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유럽, 미국 등 세계 선진항만들은 항만 하역작업에 인공지능(AI), 로봇기술 등을 활용한 완전무인자동화 시스템을 속속 도입해 항만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글로벌 허브 항만'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과정 

인력 40~70% 감소 예상 
직종 전환 교육 지원 통해 
일자리 감축 최소화 등
'연착륙'에 심혈 기울일 것

해수부와 KMI는 부산항 등 '항만 완전무인자동화' 도입은 시대적 요구이며, 글로벌 허브 항만 생존경쟁 차원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보고 있다. 이같은 인식에는 유럽과 미국에 이어 중국까지 칭다오항 등 주요 항만에 '완전무인자동화 컨테이너 터미널'을 속속 개장했고, 싱가포르와 태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다른 국가들도 앞다퉈 완전무인자동화에 나서는 상황에서 자칫 부산신항 등 국내 항만이 실기할 경우 치열한 항만 경쟁력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항만 완전무인자동화는 항만물류의 경제성·친환경성·생산성을 획기적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지금부터 도입을 서두른다고 해도 사업기간 등을 감안하면 유럽, 미국, 중국 등에 경쟁국에 비해 상당히 늦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실제로 항만 완전무인자동화가 구현되면 선사들이 요구하는 하역생산성 제공, 24시간 하역 서비스 제공, 경쟁력 있는 하역료 확보 등이 가능하다.

다만, 해수부는 '항만 완전무인자동화' 도입과 관련 일자리 감소 등 파장을 최소화하고 이를 연착륙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일 방침이다.

이에따라 물동량 증가에 따른 추가 공급되는 신규 터미널에 한해 완전무인자동화를 도입할 예정이며, 기존 터미널 인력은 고용을 유지할 계획이다. 현 세대의 일자리는 보장하면서 미래 세대에게는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 기술 혁신에 따른 선순환 성장을 기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롱비치항 등의 사례를 볼 때, 항만 완전무인자동화를 도입할 경우 하역 인력이 40~70% 정도 감소할 것으로 해수부와 KMI는 추산하고 있다.

해수부는 기존 하역근로자가 원격조정 장비 운영, 유지보수 등의 새로운 직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교육 등을 적극 지원하고, 정년퇴직 등과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2017년 발간된 항만하역요람 자료에 따르면 부산항 항운노조원 1048명 중 42.1%가 51세 이상이며, 30세 이하는 3% 수준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현 정부의 주요 정책인 혁신성장 과제 중 해수부에는 '스마트 해상물류'가 있는데, 스마트 해상물류 중 한 축이 항만 자동화"라며 "항만 완전무인자동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 등과 맞물려 일자리 영향 등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항운노조, 항만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를 통해 공감대를 가질 수 있도록 이달 중 정책 워크숍을 개최하고, 4월 중 선진 항만 시찰도 추진하는 등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소통하며 항만 완전무인자동화를 도입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아직은 시기 상조 : 항운노조

지난해 11월부터 부산항운노조로부터 용역을 의뢰받아 중국 칭다오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 '선진' 스마트 항만을 조사하고 돌아온 연구팀은 5일 부산항에 완전무인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시기 상조라는 결론을 밝혔다.

임동우 한국항만운송노동연구원 원장은 해외 무인자동화 터미널 사례를 조사한 결과 문제점을 크게 6가지로 꼽았다.

투자비·유지보수비 엄청나
인건비 절감해도 되레 손해
잦은 점검으로 장비 놀리고
기상 악화 빠른 대응 어려워

갑자기 몰리는 물량 처리엔
기존 '반자동화'가 효과적

우선 투자비. 기존 전통 터미널의 2배, 반자동화 터미널의 1.7배에 이르는 초기 투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야드에 투입되는 인건비는 48% 절감할 수 있지만 커진 초기 투자비만큼 회수 기간도 대폭 길어진다고 그는 지적했다.

가장 고민스러운 지점은 생산성이다. 목표인 시간 당 40M(무브:컨테이너 처리 속도 단위)에 한참 부족한 25~27M에 그친다는 것이 연구팀이 취합한 현장의 분석이다.

자동화 설비 사이 통신이 원활하지 못해 오작동이 많고, 잦은 점검으로 장비를 세워둬야 하는 기간이 1년에 90일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또 다른 문제는 기상 악화에 대한 발빠른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안개가 끼거나 눈, 비가 내릴 경우 센서 작동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부산항은 환적 물량이 전체 물동량의 절반 이상인데 짧은 시간에 갑자기 몰리는 물량을 신속히 처리하는 데는 무인자동화에 한계가 크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앞서 부산항만연수원 장하용 주임교수는 국가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4차산업혁명이 일자리를 줄이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북미 동쪽 해안 항만에서 완전무인자동화 도입 논의를 노사가 함께 진행하다 지난해 12월 협의가 일시 중단됐다고 전했다. 자동화가 이뤄져도 일부 항만에 노동자를 배치해야 한다는 노조 측 주장에 사측이 완전무인화를 고수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도 두 차례 파업이 벌어진 뒤 논의를 2020년까지 유예하기로 논란을 임시 봉합한 상태라고 밝혔다. 중국과 싱가포르, 네덜란드가 무인자동화를 도입하게 된 배경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장 교수는 지적했다.

숙련된 항만노동력 공급이 부족한 중국은 정부 주도로 신성장산업의 세계적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방침 아래 사회적 갈등 없이 무인자동화를 밀어 붙일 수 있었고, 싱가포르 역시 자국민 임금이 높아 인접한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에서 인력을 공급받는 처지에서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사회적 갈등을 잠재웠다고 장 교수는 진단했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노동자 권리 보장 수준이 높아 파업에 대비한 대안 성격으로 자동화를 추진했다고 봤다.

장 교수는 "세계적 터미널 운영사의 사례를 봐도 오랜 기간 다각도로 검토한 뒤 실제 항만에서 장비를 검증해가며 적용 가능성을 검토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장·차관 워크숍에서 정책 우선 순위를 국민 삶을 지키는 데 두고 국민 관점에서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을 입안자들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현수 기자·이호진 기자 song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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