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저도의 추억', 이제 누구라도 새겨요

입력 : 2019-09-18 16:50:22 수정 : 2019-09-18 18: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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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만에 개방된 ‘대통령의 섬’
숲속길·둘레길·해변 1.5 ㎞ 탐방
수백 년 된 곰솔·동백나무 가득
월·목요일 제외 하루 두 차례 입도
하루 600명 제한 3일 전 예약 필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막대기로 ‘저도의 추억 ’글자를 새겼던 모래 해변. 저도가 47년 만에 개방되면서 이젠 누구나 여행의 추억을 쌓을 수 있게 됐다. 벌써 해변에 누군가 새겨놓은 글씨가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막대기로 ‘저도의 추억 ’글자를 새겼던 모래 해변. 저도가 47년 만에 개방되면서 이젠 누구나 여행의 추억을 쌓을 수 있게 됐다. 벌써 해변에 누군가 새겨놓은 글씨가 보인다.

연리지 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옛 골프장. 멀리 보이는 경호원 숙소 옆에 대통령 별장이 들어서 있다. 연리지 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옛 골프장. 멀리 보이는 경호원 숙소 옆에 대통령 별장이 들어서 있다.



‘대통령의 섬’ 저도가 47년 만에 국민 모두의 섬으로 돌아왔다. 지난 17일 오후 개방 후 첫 유람선을 타고 들어가 본 저도는 수십, 수백 년 된 아름드리 곰솔과 동백나무가 가득했다. 그 사이로 언뜻언뜻 거가대교와 멀리 부산신항이 모습을 드러내고, 시원한 바람과 파도 소리가 온몸을 휘감았다. 둘레길을 걷는 것만으로 도시의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바다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해대로 불리던 저도, 금단의 섬에서 이제 국민의 품으로 되돌아 온 저도의 속살 안으로 들어갔다.


■ 설렘으로 찾은 저도, 곳곳에 비경

17일 오후, 저도 행 유람선이 출발하는 거제 궁농항은 묘한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찼다. 단체 또는 가족 단위로 저도 입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특별한 장소를 찾는다는 생각 때문인지 조금씩은 들뜬 모습이었다.

저도는 행정구역상 경남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에 속한다. 섬 전체에 곰솔(일명 해송)과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47만 6000㎡의 작은 섬이다. 부산에서 거가대교를 건너가다 보면 해저터널을 통과한 뒤 첫 번째, 두 번째 사장교 사이에 있는 섬이다. 누운 돼지 모양을 닮아 ‘저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궁농항을 떠난 지 10분 만에 거가대교 중간에 있는 저도가 눈앞에 들어온다. 모래 해변과 선착장, 군인 휴양시설인 콘도가 멀리 보인다. 이날 첫 유람선을 타기 위해 장모와 함께 가족여행을 왔다는 최장신(43·인천) 씨는 “말로만 듣던 대통령 휴양지를 직접 보기 위해 일찌감치 9월 초에 예매를 했다”며 “가족들에게 오래 추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 같다”고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저도 선착장에 내리자 첫눈을 사로잡은 것은 정박해 있는 군함들과 작은 섬에 어울리지 않는 넓은 잔디밭, 대형 콘도 건물이었다. 저도가 군사시설이자 대통령 별장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우치게 되는 이질적인 풍경이다.

안내소 앞에는 새로 만든 ‘저도 산책로’라는 안내 지도가 붙어있다. 탐방 코스는 모두 세 개다. 1코스는 선착장에서 콘도 건물(3관)을 지나 제2 전망대에서 해안 산책로인 동백길을 거쳐 제1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2코스는 콘도~제2 전망대~숲속길을 거쳐 제1 전망대, 3코스는 선착장에서 반대 방향으로 모래 해변과 둘레길을 지나 제1 전망대에 이른다.

산책로의 총 길이는 3㎞가 조금 넘는다. 천천히 걸어도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히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다만 시범 개방 초기에는 당분간 동백길과 제1 전망대 구간이 포함되지 않는다. 탐방객들이 갈 수 있는 구간은 콘도~제2 전망대~숲속길~둘레길~모래 해변을 잇는 1.5㎞ 구간이다. 자유탐방이 아니라 50명 단위로 문화해설사와 안전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섬을 둘러보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깨끗하게 정비된 숲속 둘레길. 깨끗하게 정비된 숲속 둘레길.

■ 대통령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색다른 풍경

거제시와 해군 측은 개방에 맞춰 둘레길 바닥에 야자 매트를 깔고 이정표를 세우는가 하면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따로 안내하는 등 세심한 준비를 마쳤다. 자연스러운 생태계 복원을 위해 사슴 70여 마리와 토끼 등도 방목했다.

콘도 건물 앞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200m 정도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제2 전망대다. 높게 솟은 사장교 주탑을 배경으로 멀리 부산신항과 진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시선이 달라져서일까. 자동차로 건너면서 본 거가대교와 바로 아래쪽에서 쳐다보는 거가대교는 사뭇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대통령만 바라보던 시선으로 주변 풍경을 찬찬히 감상하노라면 저도가 국민의 품으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이 절로 실감난다.

안전요원의 양해를 얻어 아직 탐방 코스에 포함되지 않은 동백길~제1 전망대의 950m 구간을 미리 걸어봤다. 동백길은 말 그대로 자생 동백나무가 700m 정도 터널을 이룬 곳이다. 그동안 꽁꽁 숨겨온 저도의 숨은 비경이다. 차가운 겨울, 붉은 동백꽃이 이 길을 수놓으면 마음 또한 온통 붉게 물들리라. 옛 일본군의 포 진지와 내무반 건물, 탄약고 등이 군데군데 그대로 남아있다.

제1 전망대에 올라서면 말 그대로 쪽빛 남해 바다와 그 안에 점점이 솟은 보석 같은 섬들이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가뭄이 들면 바위 위에 개의 피를 뿌려 놓았다는 백사도의 기암이 바로 눈앞이다. 공주의 목욕 장소를 더럽힌 피를 씻어내기 위해 옥황상제가 비를 뿌려 바위 색깔이 하얗게 변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섬이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7월30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저도(猪島)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모습.부산일보DB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7월30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저도(猪島)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모습.부산일보DB

400년 이상 된 아름드리 곰솔을 지나 ‘연리지 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옛 골프장을 빙 돌아 나오면 오른쪽으로 모래 해변이 나온다. 섬진강 모래를 가져다 만든 인공 해변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 휴가를 와 ‘저도의 추억’이란 글을 썼던 바로 그곳이다.

연리지 공원과 모래 해변이 만나는 곳에는 대통령 별장과 경호원 건물이 서 있다. 탐방객들은 대통령 별장은 개방에서 제외됐다는 설명에 아쉬움을 나타낸다. 1년간의 시범 개방이 끝나고 내년부터 전면 개방이 이뤄지면 대통령 별장은 물론 섬 전체에 대한 자유로운 탐방이 가능해질 수 있을까. 국민에게 되돌려 주고, 나아가 남해안 관광 중심지로 활용하다는 개방 취지에 맞춰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선착장에 내린 탐방객들이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는 모습. 선착장에 내린 탐방객들이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는 모습.


■ 어떻게 들어가나

관광객들은 월·목요일을 뺀 주 5일 저도에 들어가 섬을 둘러볼 수 있다. 거제시 장목면 궁농항에서 하루 두 차례 저도 행 유람선이 뜬다. 하루 방문 인원은 오전, 오후 300명씩 600명이다.

저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선일 기준 3일 전까지 인터넷(www.jeodo.co.kr)이나 전화(055-636-7033)로 예약을 해야 한다. 아직까지 군사시설이 있다 보니 미리 해군의 승인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당일에는 저도 행 배를 탈 수 없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주말 배편은 현재 10월 말까지 모두 매진되고, 평일도 여유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해군의 겨울철 정비 기간인 12월~내년 2월까지는 탐방이 제한되므로 올해 안으로 저도를 둘러보고 싶으면 예매를 서둘러야 한다.

유람선 출발 시간은 오전 10시 20분, 오후 2시 20분이다. 운항 항로는 궁농항에서 출발해 한화리조트 앞 해상을 지나 거가대교 아래를 지나 저도로 들어간 뒤 중죽도, 대죽도 앞바다를 거쳐 궁농항으로 돌아오는 2시간 30분 코스다. 요금은 어른 2만 1000원,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는 1만 5000원이다.

글·사진=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부산일보 | ‘금단의 섬’ 경남 거제시 저도 47년 만에 ‘만인의 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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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제공 거제시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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