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덧없기 때문이다

입력 : 2022-09-29 18: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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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방에서/리브 스트룀크비스트

섹스 심볼이었던 미국 배우 매릴린 먼로(위쪽)와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웠으나 그 아름다움의 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았던 비운의 황후 ‘시시’. 부산일보DB·돌베개 제공 섹스 심볼이었던 미국 배우 매릴린 먼로(위쪽)와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웠으나 그 아름다움의 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았던 비운의 황후 ‘시시’. 부산일보DB·돌베개 제공

‘시시’라는 애칭으로 불린 비운의 황후가 있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 엘리자베트(1837~1898)였다. 그녀의 불행은 그녀가 숨 막히게 너무 아름다웠다는 데 있었다. 1865년에 그려진 시시 초상화는 세계에 그녀의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그러나 시시는 평생 부담에 짓눌려 살았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해야 했던 것이다.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경쟁 상대가 돼버린 것이다. 충직한 한 시녀는 “마마의 인생에는 주어지지 않은 복이 없는데도 마마에게는 깜짝 놀랄 정도의 깊은 우울이 드리워져 있다”고 일기에 썼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집착해 온 역사 분석

1970년대 자본주의 ‘외모 지상’ 부추겨

비운의 오스트리아 황후 ‘시시’ 통해

아름다움의 ‘덧없음·허무’ 이야기해


〈거울의 방에서〉는 부제 ‘우리는 왜 외모에 집착할까’라는 문제의식으로 외모 지상주의를 해부한 ‘만화 같은’ 책이다. ‘그림과 풍선말’을 통해, 스웨덴의 페미니즘 예술가인 저자가 여성의 아름다움에 집착해 온 역사를 분석했다. ‘시시’의 불행은 ‘사적인 자아’가 ‘공적인 자아’에 의해 식민화되었던 것에서 비롯했다. 2개의 자아가 분열했던 것이다. 아름다워서 불행했던 시시는 61세 때 군주제에 반대하는 이탈리아 아나키스트에 의해 암살됐다.

이런저런 결혼의 사회사가 있었다. 곤궁했던 서로마제국의 샤를마뉴 대제는 제국을 키우기 위해 5번이나 결혼했다. 외모나 사랑은 중요하지 않았고 정치적 세력 확산이 결혼의 핵심 요소였다. 그러나 훨씬 탄탄했던 동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정치적 동맹에서 자유로워 ‘신부 쇼’를 통해 외모 중심으로 아내를 택했다.

이런저런 결혼의 사회사는, 그러나 20세기 후기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서면서 단일적으로 변해버린다. 외모 지상주의 사회로 변해버린 것이다. “시장이 필수제품으로 포화되어 자본주의가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했던 1970년대에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됐다”는 것이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분석이다. 피임약 개발이 이를 뒷받침했다. “여성의 성애화, 남성의 성애화, 섹시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도록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는 섹슈얼리티 덕분에 자본주의는 새롭게 확장할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획득했다.” ‘순결’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섹슈얼리티’가 새로운 사회적 지위와 능력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중심 이미지는 노만 록웰의 1954년 그림 ‘거울 앞의 소녀’다. 무릎 위에 잡지를 펼쳐놓고 거울 앞에 쪼그려 앉은 소녀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는 왜 잡지에 나와 있는 여자처럼 아름답지 못할까, 라는 열등감 우울 불안을 드러낸 그림이다. 우리는 그 소녀처럼 현대 사회라는 거울의 방에서 외모에 집착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 카메라 렌즈라는 작은 거울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 어떻게 외모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매릴린 먼로는 죽기 6주 전, 한 사진작가를 불러놓고 24시간 동안 2600장의 사진을 찍어 모든 것을 드러내는 쇼도 벌였다.

책에는 5명의 인터뷰를 실어놨다. 53세 니나는 외모에 자신감이 넘치는 여성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섹스 요청을 거절한 남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예전 같지 않고 추해지면서 결국에는 공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니나는 ‘나에게도 한번쯤은 있었다’라는 괴테의 시구를 떠올리며 산단다. 73세 카린은 평생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이제는 내면의 자신과 연결돼서 자신을 아름답다고 느낀다고 한다. 나이를 먹고 용기를 내서 나 자신이고자 하기 때문에 자신을 아름답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이렇다. 아름다움은 덧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계속적인 상승곡선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한다. 3가지를 말한다. 첫째 아름다움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우연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영국 작가 조지 엘리엇(1819~1880)은 두상이 말머리처럼 볼품없이 길쭉했는데 지성을 쌓아 멋진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엘비라 매디건(1867~1889)처럼 미모를 타고한 여성은, 동명의 영화와는 달리 한 장교에게 납치돼 결국 권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둘째 아름다움은 어떤 목적도 내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바다나 하늘, 이 세계의 풍부한 아름다움은 완벽히 목적이 없지 않은가라는 것이다. 셋째 아름다움은 소유할 수도 저장할 수도 없으며 본질적으로 덧없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그것이 덧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시는 32세 이후 자신의 그림을 더 이상 그리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 눈을 피해 야밤에 산책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덧없이 사라지기에 아름답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시시가 어두운 숲속을 하염없이 혼자 산책하고 있는 모습들을 그려놓은 것이 책의 마지막에 실려 있다. 리브 스트룀크비스트 지음/이유진 옮김/돌베개/168쪽/1만 95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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