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투수로 등판한 조선의 4번 타자, 영화 같은 22년 마무리

입력 : 2022-10-09 19:03:16 수정 : 2022-10-09 19:31:28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8일 은퇴 경기서 투타 맹활약
8회 투수로 나와 프로 첫 홀드
“아버지 기일에 은퇴” 눈물 글썽
“배트 대신 치맥 들고 응원할 것”
롯데 등 번호 10번 영구 결번

8일 LG와의 경기에 8회초 투수로 등판한 롯데 이대호. 정종회 기자 jjh@ 8일 LG와의 경기에 8회초 투수로 등판한 롯데 이대호. 정종회 기자 jjh@

‘굿바이! 이대호.’

‘조선의 4번 타자’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41)가 22년간의 프로야구 인생을 마무리하고 정든 부산 사직야구장을 떠났다. ‘KBO리그 타격 7관왕’ ‘한·미·일 최초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쓴 이대호는 등번호 ‘10번’을 남긴 채 롯데 팬들에게 전설로 남았다.

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는 롯데의 2022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이대호의 은퇴 경기가 열렸다. 롯데는 LG 트윈스를 3-2로 꺾고 올 시즌을 8위(64승 76패 4무)로 마쳤다.

이대호는 이날 은퇴 경기에 4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이대호는 1회말 2사 1루에서 외야 담장을 맞히는 큼지막한 1타점 2루타를 쳐내며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2만 2990명의 만원 관중을 흥분시켰다. 1루수 수비 때는 몸을 던지는 호수비로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날 경기의 백미는 8회초였다. 1루수 이대호가 마운드에 오른 것. 2001년 KBO리그 데뷔 이후 첫 투수 출전이었다. 상대 팀 LG는 이대호가 마운드에 오르자 올 시즌 세이브왕을 차지한 투수 고우석을 타석에 내보냈다. 이대호는 시속 120km 후반대 직구로 고우석을 투수 앞 땅볼로 돌려세워 프로 첫 홀드를 기록하며 ‘이도류(투수·타자 겸업)’ 변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롯데는 마무리 투수 김원중이 실점 없이 9회초를 틀어막아 3-2, 기분 좋은 역전승으로 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쳤다.


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선수의 은퇴식에서 이 선수가 회고 영상을 보며 감회에 젖어 있다. 정종회 기자 jjh@ 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선수의 은퇴식에서 이 선수가 회고 영상을 보며 감회에 젖어 있다. 정종회 기자 jjh@

경기가 끝난 뒤 사직구장에서는 이대호의 공식 은퇴 행사가 열렸다. 경기장 한가운데 놓인 무대에 오른 이대호는 22년간의 프로야구 선수 생활과 어릴 적 모습 등이 담긴 영상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별사를 통해 이대호는 롯데 팬들에게 마지막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이대호는 “은퇴하는 오늘이 세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었다”며 눈물과 함께 고별사를 읽어 내려갔다. 이대호는 “20년 동안 더그아웃과 타석에서 사직구장을 지켜보고 팬들의 함성을 들었던 저만큼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사직야구장에서의 22년을 반추했다.


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선수의 은퇴식에서 이 선수와 동료선수, 구단 관계자들이 영구 결번식을 진행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선수의 은퇴식에서 이 선수와 동료선수, 구단 관계자들이 영구 결번식을 진행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이어 자신의 초·중·고 시절 부모님 역할을 해 주신 할머니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대호는 “하늘에 계신 할머니의 헌신 덕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떠나는 야구 선수가 됐다. 보고 싶다”며 다시 한번 눈물을 떨궜다.

이대호는 롯데 선수가 아닌 팬으로 돌아올 것도 약속했다. 그는 “이제 배트와 글러브 대신 맥주와 치킨을 들고 사직야구장에 오겠다”며 “이대호는 더그아웃을 떠나 관중석으로 이동하겠습니다”라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편 롯데 구단은 이대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이대호의 등번호는 고 최동원 선수의 등번호(11번)에 이어 롯데 구단의 두 번째 영구결번이 됐다. 이날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도 직접 사직야구장을 방문해 이대호의 은퇴를 축하했다. 신 회장은 등번호 10번이 새겨진 영구결번 반지와 유니폼 액자를 이대호에게 전달했다. 이대호는 글러브를 신 회장에게 선물했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