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유엔기념공원·교차로 곳곳 ‘정치 현수막 공해’

입력 : 2023-03-19 20:37:00 수정 : 2023-03-20 13: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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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실사단 방문 길 가보니

자극적인 문구 동원 진흙탕 싸움
우암동 일대 입학 축하 현수막
여·야 지역 정치인 경쟁적 게시
시·일선 지자체 환경정비 비상
시민 “손님맞이 악영향” 목소리

19일 부산 동구 부산역 앞 횡단보도 근처에 각 정당의 현수막이 어지럽게 설치돼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재찬 기자 chan@ 19일 부산 동구 부산역 앞 횡단보도 근처에 각 정당의 현수막이 어지럽게 설치돼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재찬 기자 chan@

“윤석열 정권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죄 저질렀으면 벌 받아야지.”

16일 〈부산일보〉 취재진이 찾은 부산 동구 부산역. 부산의 관문이자 부산을 찾는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될 풍경인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역 앞에 게시된 현수막이었다. 검사 출신 고위 공직자 자녀의 잘못을 비판하는 내용부터 강제징용 관련 대일 협상을 비판하는 내용까지, 상대 정당을 비방하기 위해 자극적인 문구가 사용된 현수막은 보기만 해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실사단 방문 예정지인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으로 이동하는 도로에서도 여야 정치인의 ‘싸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동구 초량동 항일거리 인근에는 여당이 내건 ‘이재명판 더글로리. 죄지었으면 벌 받아야지’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에 질세라 야당은 도시철도 1호선 부산진역 인근에 ‘검사 아빠 전성시대’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여당과 대립을 이어 갔다.

상대 정당을 비방하는 내용의 현수막과 함께 정책 홍보와 관련 없는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남구 우암동 일대로 들어서자 여·야당 정치인 명의로 달린 입학 축하 현수막이 보였다. ‘사랑하는 귀염둥이들~ 두근두근 입학을 축하합니다’와 ‘졸업과 입학을 축하합니다’ 등 정책과 전혀 관계 없이 경쟁적으로 내걸린 현수막은 도로 일대를 어지럽게 했다.

BIE 실사단 방문을 앞두고 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대연동 유엔교차로와 대연교차로 등 주요 도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유엔참전기념탑 앞으로 정치 현수막이 즐비해 있다. 이 곳은 유엔로와 유엔 평화로의 교차 지점이며, 유엔 기념공원과 부산문화회관으로 가는 길목이다. BIE 실사단 방문 대비 환경정비 구역임에도 정당 현수막이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현수막에 새로운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멘트만 달리한 같은 의원의 입학 축하 현수막과 벌써 서너번 째 마주하는 '검사 아빠 전성시대' 현수막이 눈에 띈다.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 협상을 규탄하는 야당의 현수막도 등장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정치 현수막 탓에 평화를 상징하는 유엔공원이 정쟁의 터가 된 모습이다.

2030세계박람회 부산 유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BIE 실사단 방문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 바쁜 부산시와 일선 지자체는 비방 위주의 정치 현수막 탓에 비상이 걸렸다. BIE 실사단 방문을 앞두고 각 지자체는 현수막 등 불법 광고물 제거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BIE 현지 실사에 대비해 불법 광고물 집중 정비를 진행 중인 해운대구는 기간제 근로자 4명, 자활근로자 37명을 팀으로 하는 기동정비반을 구성했다. 이들은 실사단 동선인 엘시티부터 영화의전당에 이르는 도로에서 불법 광고물을 정비하고 단속을 실시해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당이 내건 현수막은 불법 광고물에 포함되지 않아 마음대로 제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극적인 문구를 담은 정치 현수막을 지켜봐야 하는 시민의 불만도 높다. 부산역 인근을 지나던 시민 이 모(56) 씨는 “저렇게 현수막을 내걸면서까지 정파 싸움을 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계속 지켜봐야 하는 지역민으로서는 매우 불편하다”며 “일반 주민은 관심 없는 내용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드니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난립하는 정치 현수막이 엑스포 유치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정구 남산동에 거주하는 박 모(53) 씨는 “언어는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현수막이 많이 붙은 모습을 보면 미관상 좋지 않은데다 실사단으로선 무슨 일인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엑스포가 유치돼야 부산 경제도 살아날 텐데 실사단이 방문하는 며칠만이라도 양당이 협조해 좀 더 쾌적한 도시를 보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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