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가 모처럼 맞은 수주 풍년에도 일손이 없어 발을 구르는 가운데, 현장 노동자들은 지금의 다단계하청과 저임금 구조에선 인력난 해소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일보DB
“가장 큰 문제는 더 위험하고 고된 노동에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조선업계가 모처럼 맞은 수주 풍년에도 일손이 없어 발을 구르는 가운데, 현장 노동자들은 지금의 다단계하청과 저임금 구조에선 인력난 해소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10명 중 7명이 지금보다 업황이 좋아져도 한번 떠난 동료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거제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는 지역에 사업장을 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종사자의 임금‧근로조건 인식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설문은 2015년부터 본격화된 조선업 위기와 고강도 구조조정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다. 양대 조선소 원청과 사내외 협력사를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방식을 병행해 701부의 설문지를 확보, 분석했다.
집계 결과, 과거 조선업에 종사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일감을 찾아 떠난 노동자들이 업황이 개선되면 돌아올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67.3%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유로 다른 사업장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수준(56.4%)을 첫손에 꼽았다. 열악한 노동환경(33.5%)도 복귀를 막는 걸림돌로 들었다.
실제 2015년을 기점으로 대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조 단위 손실이 불거지고, 발주 시장까지 얼어붙자 정부가 나서 고강도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조선소마다 감원 칼바람이 불었고, 경영진은 상여금을 깎고 임금을 동결시켰다. 여기에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잔업과 특근까지 줄면서, 2015년 대비 최저임금은 64.2% 올랐지만 조선 노동자 실질임금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거제 양대 조선소에서 일하는 현업 노동자들은 인력수급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로 더 위험하고 고된 노동에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들었다. 부산일보DB
무엇보다 선박 건조의 70% 이상을 책임지는 하청 노동자의 현실은 더 열악했다. 가뜩이나 원청 대비 50~70% 수준이었던 임금이 더 낮아졌다. 이후 최근까지 찔끔 인상에 그쳤다. 이 때문에 지금도 세후 월급이 200만 원 안팎인 노동자가 태반이다.
이렇다 보니 앞서 조선소를 떠난 노동자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대부분은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이나 배터리 공장 등 육상 건설 현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은 조선소에 비해 안전하고 일은 수월한데 일당은 최하 18만 원 선으로, 13만~14만 원 수준인 조선소보다 5만 원가량 높다. 달로 치면 100만 원이 넘는다.
조업 현장에선 일감은 넘쳐나는데 정작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서 조사한 <경남 지역 중소형조선사 기능직 필요-부족 인력> 자료를 보면 작년과 재작년 수주한 선박 건조가 본격화하는 올해 2분기부터 전국적으로 1만 명, 경남에서만 최소 3900명 이상을 충원해야 정상 조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충원은커녕 있는 사람도 못 지키는 형편이다. 관건은 임금이다. 조선협회가 도장 분야 신입 직원 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9%가 ‘저임금’을 첫 손에 꼽았다. 이어 높은 노동강도(16%), 불투명한 미래전망(13.3%), 열악한 근로환경(9.3%)을 이유로 들었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진수식 모습. 부산일보DB
이런 상황에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정책에 대해선 전체 응답자가 다소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특히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에 대해선 76.3%가 반대할 만큼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조선업 지속 성장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놓고도 원청과 하청의 인식차가 컸다. 원청 노동자는 조선업체 등의 기술개발‧수주역량강화(31.3%)를 든 데 반해, 사내하청 61.3%와 사외업체 44.4% 원하청 불평등 해소와 다단계 하청 금지를 최우선에 뒀다.
한국노동연구원 박종식 박사는 “고숙련 기능직에 정당한 보상을 통해 고품질,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선순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거제시와 양대 조선소 원하청 노사, 금융기관, 노동단체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인력난 해소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