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도롱뇽 사는 부산 쇠미산 ,녹차밭이 숨어 있네

입력 : 2023-05-30 10:57:54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녹차밭은 금병산악회 전 총무가 심어
도롱뇽 사는 작은 연못은 주민이 가꿔

쇠미산 작은 녹차밭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쇠미산 작은 녹차밭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우리 녹차밭은 거름도 비료도 일절 하지 않습니다. 쇠미산의 물과 땅, 바람이 키워내지요." 녹차나무를 심은 김용상(83) 전 금병산우회 총무가 직접 심고 일군 녹차밭을 소개했다. 쇠미산에 녹차밭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소개한 이는 김선관 부산시낚시협회 회장. 갑자기 녹차밭 제보가 와서 의아했는데 현장에 도착해서 모든 것이 풀렸다. 김 회장은 30년 이상 이 동네 토박이로 매일 쇠미산을 등산하는 마니아. 김 전 총무는 40년 동안 이 동네 토박이로 녹차나무나 벚나무의 나이테를 속속 알고 있는 이야기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으며 쇠미산에서 푸른 기운을 들이마시는 힐링 산행했다.


연초록 새잎을 내민 녹차나무. 연초록 새잎을 내민 녹차나무.

쇠미산에 숨은 녹차밭

문전옥답이라고 하듯이 산도 가까이 있으면 보물이 된다.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덕유산 등 좋은 산이야 많고 많지만, 늘 큰맘 먹어야 다녀올 수 있는 곳. 야트막한 야산이지만 어떠랴. 내 집 근처에 있는 산이 보물이다.

금병산우회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쇠미산을 사랑하는 인근 주민들이 모인 산우회다. 금병약수터도 회원들이 관리하고 있고, 지금도 매일 약수터 인근 체육시설에는 회원과 주민들이 집결한다. 현장 분위기는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화기애애하단다.

사연은 이랬다. 부산시낚시협회 김 회장이 문자를 보냈다. 산속에서 녹차밭을 수십 년째 가꾸는 어르신이 있어 꼭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한 번은 만날 약속을 했으나 비가 와서 미뤄졌다. 다시 잡은 날 약속은 오전 8시 20분으로 했다. 녹차밭 가꾸는 이들은 오전 7시면 산에 온다고 했다.

부산 동래구 쇠미로 파라다이스골프랜드에서 김 회장과 만나 산행을 시작한다. 앞서 걷는 김 회장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수십 년을 다닌 길이라 익숙한가 보다.

한 10분쯤 가니 길가에 가로수처럼 심은 녹차나무가 있다. 새순이 파릇하다. 이내 금병약수터가 나오고 미리 연락을 받은 김 전 총무가 기다리고 있다. 얼굴색이 무척 밝은 분이다.



녹차밭과 벚나무의 유래를 설명하는 김용상 씨. 녹차밭과 벚나무의 유래를 설명하는 김용상 씨.

벚나무 170그루 심다

소개할 녹차밭은 원래 주민이 개간해 밭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산속에서 채소를 재배하려면 거름과 농약이 없고는 안 된다고 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러 오는 주민들이 민원을 많이 넣었다는 것. 결국 그 밭을 가꾸던 분이 그만둬 묵정밭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밭을 가꾸던 곳이다 보니 여름철 비가 많이 오면 토사가 무너져 내리는 등 또 다른 부작용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금병산우회 총무이던 김 총무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고 한다. "여성 회원 한 분이 녹차 씨를 구해 주었어요. 그래서 물에 오래 불려서 심었죠." 의외로 녹차나무가 잘 자랐다고 했다. 녹차의 뿌리는 직진성이 있어 흙 속 깊이 뿌리내렸다. 자연스럽게 토사가 무너지는 것도 막을 수 있어 방재수 역할도 했다. 농약과 비료는 일절 쓰지 않으며 매년 가꾼 것이 20년 정도 됐다고 한다. 가을이면 전지도 해 주고, 새순은 따서 동료들과 나눈다. 심하지만 않으면 등산객들이 잎을 따 가는 것을 막지도 않고 있단다.

"이 주변 벚나무도 우리 산악회에서 심었습니다. 제가 총무할 때라 잘 알지요. 벚나무 150그루를 회비로 사서 심었는데 당시 한 그루 3000원씩 줬지요." 김 총무의 말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회원이 동네 주민이라 우리 동네 산을 가꾸고 지키자는 단합심이 남달랐다고 했다.

벚나무는 아름드리로 자라 주민들에게 한여름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고 있었다. 금병산우회의 아지트이기도 한 금병약수터 주변엔 산악회의 안내문과 게시판, 구청에서 만든 약수터 안내판 등이 있다.


작은 연못에 담긴 하늘과 도롱뇽 알. 작은 연못에 담긴 하늘과 도롱뇽 알.

작은 연못에는 도롱뇽

녹차밭이 탐스럽다. 새순을 하나 따서 입에 넣었더니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녹차향이 난다. 주변 운동기구가 있는 곳은 바닥이 맨질맨질하다. 매일 오는 분들이 빗자루로 쓸고 닦아 안방처럼 깨끗하다. 김 총무와 헤어지고, '김 회장의 매일 산행 루트'를 따라 오른다. 김 회장은 매일 느긋하게 한 시간 정도 쇠미산 등산을 즐긴다고 했다.

산허리를 질러 만덕고개 방향으로 간다. "조금 더 가면 참 멋진 곳이 있습니다. 한 주민이 매일 와서 가꾸던 곳인데요. 지금은 완성한 상태이고, 그 분은 요즘은 잘 안 보이네요." 작은 연못과 돌탑이 있다. 돌탑은 얼마나 정성들여 쌓았는지 예술성이 느껴진다.

맑은 연못에는 도롱뇽이 산란해 놓았다. 다만 며칠 전 내린 비로 알 무더기에 흙탕이 덮여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것도 자연이니. 공든 탑은 허물어지고 쌓기를 반복하며 완성했는데, 그날 탑을 쌓은 주민과 산에서 자주 만나던 이들이 자축연도 했다고 한다.


쇠미산을 사랑하는 주민이 공들여 쌓은 돌탑. 쇠미산을 사랑하는 주민이 공들여 쌓은 돌탑.

하늘이 담긴 작은 연못을 뒤로 하고 다시 산길을 간다. 아름드리 굴피나무가 반겨준다. 성큼 올라서니 만덕고개 생태통로다. "여기 오면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오름길 막바지에 김 회장의 ‘전용 대형 선풍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생태통로 아래에서 잠시 땀을 식히다가 하산한다.

여러 갈래 길이 있어 다양한 하산로가 있는데 원점회귀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길눈이 있어야 한다. 멀리 골프장 그물망이 보인다. 부산시낚시협회 회장 덕분에 그가 수십 년 동안 애착하는 쇠미산 산행 코스의 푸른 맛을 살짝 맛봤다.


▲금병약수터 등산로

파라다이스 골프랜드를 찾아가면 된다. 골프연습장 진입 전, 보탑사 입구가 사실상 금병약수터 산행의 기점과 종점이다.

보탑사 입구~좌측 등산로~금병약수터~녹차밭~체육 시설~작은 연못(돌탑)~굴피나무 군락지~만덕고개 생태통로~계곡 옆 하산로~보탑사 입구까지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만덕고개에서 이정표가 잘 돼 있고, 보탑사 입구에도 등산로 안내가 잘 돼 있다. 산길이 여러 갈래로 많으나 위로 오르면 금백종주길(금정산~백양산) 주능선이자 낙동정맥 능선에 도달하기에 주능선에 올라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이번 코스는 능선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허리를 가로지르면서 완만한 산책형 등산을 할 수 있다. 토질이 마사토라 미끄러우니 낮다고 얕보지 말고 운동화보다는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금병약수터 샘물은 시원하고 수질도 좋아 매일 약수를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 이색적인 녹차밭 풍경도 즐기며 가볍게 걷는 산길이 금병약수터 산행 코스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


보탑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보탑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좌측 보탑사 입구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좌측 보탑사 입구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왼쪽으로 완만히 돌아서 오른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왼쪽으로 완만히 돌아서 오른다.


금병약수터 물맛이 좋다. 금병약수터 물맛이 좋다.

운동기구와 잘 가꾼 화단. 나리꽃이 자라고 있다. 운동기구와 잘 가꾼 화단. 나리꽃이 자라고 있다.

녹차밭 입구에 있는 등산로 안내도. 녹차밭 입구에 있는 등산로 안내도.

녹차밭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김용상(왼쪽) 금병산우회 전 총무와 김선관 부산시낚시협회 회장. 녹차밭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김용상(왼쪽) 금병산우회 전 총무와 김선관 부산시낚시협회 회장.


매일 빗자루로 체련 시설 부근을 쓸고 있는 회원과 주민들. 매일 빗자루로 체련 시설 부근을 쓸고 있는 회원과 주민들.

잘 가꿔 놓은 연못과 돌탑. 잘 가꿔 놓은 연못과 돌탑.

굴피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굴피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만덕고개 생태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만덕고개 생태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골프연습장 그물이 보인다. 종점이 발 아래다. 골프연습장 그물이 보인다. 종점이 발 아래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