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문현 국제금융단지는 금융 산업 등 수도권 중심주의 타파에 대한 노력과 ‘부산도 해보자’는 균형발전 열망을 거름으로 태동했다. 굴뚝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꾀해 지역 내 금융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자는 차원이었다. 전국 2개 금융중심지에 부산이 포함되기까지 부산은 ‘골리앗’ 서울과 치열한 힘겨루기를 반복해 왔다. 현재 부산이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지 15년이 넘었지만, 금융 기능과 인프라는 여전히 서울에 치우쳐져 있다.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기울어진 균형을 바로잡을 무게추로 떠오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 정부의 지방시대 정책 추진으로 9부 능선에 오르는 듯 보였던 산은 부산 이전이 지난해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로 동력을 잃고 지지부진하기 시작했다. 사실 산은 부산 이전은 매 과정마다 커다란 벽에 막혀 왔다. 거대 양당의 정치적 셈법과 이해관계가 맞물린 정쟁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막론하고 모든 정치인이 국가균형발전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산은 부산 이전을 새 정부 균형발전 정책의 첫 단추로 끼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사진으로만 제시됐던 산은 부산 이전 정책이 본격화한 건 지난 윤석열 정부 때다. 윤 정부는 2022년 5월 산은 부산 이전을 국정 과제에 포함시켰고, 산은 내부에서 이전 설명회가 열리고 조직개편안이 의결되는 등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지난 정부가 ‘지방시대’를 천명했던 만큼, 산은 부산 이전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023년 1월 금융위원회 업무 계획에 ‘연내 산은 부산 이전 계획 승인’이 설정되고 산은 동남권투자금융센터 신설과 직원 이동이 이뤄졌다. 이후 2023년 5월 국토교통부가 산은을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공시하면서 사실상 관련 행정절차는 마무리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4월 열린 4·10 총선이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108석을 얻으며 참패한 국민의힘은 겨우 개헌저지선을 지켜낸 반면, 당시 민주당은 범야 192석을 내세우며 사실상 입법권을 손에 넣었다. 지난해 총선 직후 산업은행 본점 소재지를 부산으로 명시하는 산은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산은이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의 지역구인 영등포구에 위치한 데다, 전임 금융노조 위원장 출신인 박홍배 의원이 국회에 입성하며 산은 부산 이전을 틀어막기 시작하면서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당시 당대표)의 입김도 작용했다. 이 후보는 산은 부산 이전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으며 ‘무대응’ 전략을 펼쳤다. 지난 3월 이 후보가 부산을 찾았을 때도 그는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이 같은 이 후보의 행보는 민주당 내에서 ‘산은 부산 이전 반대’로 받아들여지면서 산은법 개정안은 상임위 논의 테이블조차 열리지 않았다. 여기에 윤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지방시대’ 정책이 저물어가며 산은 부산 이전이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간 이 후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민주당과 국민의힘 대권주자들은 산은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특히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한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김두관 전 의원, 김동연 경기지사 모두가 산은 부산 이전 필요성을 강조했다. 나경원·안철수·한동훈 전 후보도 산은 필요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유력 대권주자인 이 후보만큼은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해선 함구했다.
산은 부산 이전은 큰 틀에서의 공공기관 이전, 국가균형발전과 직결된다. 공공기관 이전 정책은 민주당이 표방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산이기도 하다. 앞선 정부와 산은 경영진 등은 산은이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약 300조 원의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역 일자리 창출과 경제 유발 효과, 금융 인프라 확대, 수도권 공화국 대응 축 마련 등 여러 부가 효과도 기대됐다. 저출생,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 소멸화를 막을 대책인 셈이다.
정부는 올 연말 ‘2차 공공기관 이전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국토부는 오는 10월까지 이 같은 계획을 밝히고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준비한다. 민주당이 산은 부산 이전 개별 정책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만큼, 국민의힘은 앞서 이 같은 2차 공공기관 이전 계획에 산은 부산 이전안을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은 정파와 정치를 떠난 국가 생존 전략인 만큼, 산은 부산 이전을 정쟁의 요소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 정동만 부산시당위원장 권한대행은 이에 대해 “산은 부산 이전은 지난 정부 국정 과제이자, 이번 대선 부산의 핵심 현안”이라며 “산은 이전은 글로벌 금융도시 부산을 완성시키고 동남권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만들 중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산은 부산 이전은 정파를 떠나 모든 후보가 한 목소리를 내야할 사안으로, 330만 부산 시민의 염원을 정치권이 하루빨리 실현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