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빠 동료들’ 채용·승진 밀어주기 드러난 선관위

입력 : 2023-05-30 0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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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어 올해도 의혹 불거져
투명한 조직 운영 위한 쇄신 시급

박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지난 23일 오전 북한의 해킹 시도와 사무총장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를 항의 방문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 이만희 의원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지난 23일 오전 북한의 해킹 시도와 사무총장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를 항의 방문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 이만희 의원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대한 쇄신 요구가 거세다. 선관위 고위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진 데 따른 것이다. 의혹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중앙선관위 사무총장과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들이 자기 자녀의 면접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리고, 동료 면접관들은 해당 자녀들에게 최고점을 줘 합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해당 간부들이 자녀의 승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사실이라면 ‘아빠 찬스’를 확실히 사용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의무 사항인 ‘사적 이해관계 신고’도 하지 않았다. 공정이 생명인 선관위가 실은 특혜 채용 복마전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선관위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직전 사무총장도 아들 특혜 채용 의혹으로 지난해 3월 불명예 퇴진했다. 그런데 불과 1년 2개월 만에 똑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쯤이면 단발성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폐단의 문제로 봐야 한다. 선관위 내부에서 오래전부터 쉬쉬하던 일이 근래 터져 나왔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공연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때처럼 지금도 당사자들은 관련 의혹을 대부분 부인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변명의 여지는 적어 보인다. 논란이 확산하자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은 동시에 자진 사퇴했다. 이는 중앙선관위에서 전례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선관위의 대응은 미심쩍다.

지난해 직전 사무총장 퇴진 당시 선관위는 재발 방지를 위한 자체 감사를 강화하겠다고 했으나 일부 조직을 개편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번에도 선관위는 자체 특별감사를 통해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로 했다. 달라진 건 감사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겠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또 5급 이상 직원의 자녀 채용 사례를 전수조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하지만 이미 국민적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선관위가 아무리 조사와 감사를 벌인다 한들 의혹을 벗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자체 감사를 엄중히 진행하되,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면 외부기관에 감사나 수사를 요청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선관위는 치부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쇄신은 그런 연후에 가능하다. 이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현 여권의 ‘문재인 정부 인사’ 찍어 내기 주장과는 별개의 문제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고, 그런 선거 관련 규제와 감독 권한을 갖고 있는 조직이 선관위다. 이런 선관위의 도덕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으면 국가 기반이 흔들린다. 차제에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구의 위상을 유지하면서도 조직 운영에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는 등 개혁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선거 관리는 세계 최고”라는 평을 얻은 우리 선관위다. 선관위 스스로 그런 국민적 자부심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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