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유출 심각한 부산, ‘고립청년’ 충격파 더 크다 [부산 고립청년 리포트]

입력 : 2023-05-30 2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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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고립청년 리포트] 중. 은둔형 외톨이 현주소

보이지 않아도 고립청년 급증세
세대 간 문제 번지기 전 대비를
80대 부모가 50대 자식 돌보는
일본 ‘8050문제’ 남의 일 아냐
은둔 장기화 땐 노인 문제까지
인구 구조 취약한 부산 더 문제

한국보다 먼저 고립청년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은 고립청년이 낳은 사회 문제로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니트(NEET)족 등을 포괄하는 고립청년 중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가정에서 사회로 확대되고, 세대간 문제로도 번진 지 오래다. 한국은 고립청년 문제가 일본과 같은 단계에 들어선 건 아니지만,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는다면 일본과 비슷한 사회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커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보이지 않는 급증세’…파악 한계

일본어 ‘히키코모리’를 번역한 은둔형 외톨이는 국내에서 명확하게 합의된 개념은 없다. 다만 외부와의 사회적 교류 없이 3개월 이상 집 안에 머물며 진학·취업 등 사회참여 활동에 거리를 두는 사람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통용된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인 니트족과 달리, 은둔형 외톨이는 관계 맺기 등 사회 생활을 하지 않는 심각한 단절 상태에 처한 이를 뜻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아 그 숫자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조사 기관별로 추정치도 다양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 방안’ 보고서에서 2021년 기준 19~34세 청년 중 고립·은둔 청년은 약 53만 8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약 33만 4000명에 비해 61%(20만 4000여 명)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부산복지개발원이 조사한 부산의 은둔형 외톨이 숫자는 최소 7500명에서 많게는 2만 2500명으로 추정됐다.

관련 학계와 연구기관 전문가들은 최근 은둔형 외톨이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산연구원 박주홍 책임연구위원은 “관련 국내 조사가 미비해 비교 근거의 한계는 있지만,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상황, 그리고 최근에 나오는 통계 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사이 청년 은둔형 외톨이가 상당한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눈앞 다가오는 일본 ‘8050 문제’

은둔형 외톨이를 방치하면 어떤 문제를 불러일으킬까. 이웃 나라 일본의 대표적인 은둔형 외톨이 문제로 꼽히는 ‘8050 문제’는 80대 부모가 독립하지 않은 50대를 부양하는 사회 현상을 지칭한다. 은둔형 외톨이를 비롯한 고립청년이 40~5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독립하지 않고 부모의 연금이나 자산에 기대어 생활하며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2010년대 들어 표면화됐다.

2019년 6월, 일본 도쿄 네리마구에서 고위 관료 출신인 전 일본 농림수산성 구마자와 히데아키 사무차관(당시 76세)이 자택에서 은둔형 외톨이였던 장남(44)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됐다. 구마자와 전 차관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가와사키시에서 50대 은둔형 외톨이 남성이 아동을 비롯해 20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을 보고 장남이 같은 사건을 일으키는 장면을 상상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은둔형 외톨이 고령화’ 즉 ‘8050 문제’가 살인 사건으로 표면화된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다.

차관의 변호인이 언급한 사건은 같은 해 5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은둔형 외톨이 51세 남성이 역 인근 길거리에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지고 18명이 중상을 입은 ‘가와사키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다.

또 일본에서는 40대 이상이 되어도 어릴 때부터 살아온 방에서 얹혀 살면서, 아르바이트로 번 용돈으로 취미 생활을 영위하는 ‘어린이방 아저씨’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고립청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은둔 대책, 한시가 급하다

은둔에 한 번 빠지면 기간이 수년에 달할 정도로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고, 은둔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신적·신체적 건강도 악화하기 마련이다. 또 이런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은둔형 외톨이 범죄나 중장년·노인 문제 같은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성아 부연구위원은 “고립된 청년이 사회적 관계를 계속 형성하지 못하면 고립 중·장년, 노인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정신건강 악화나 자살률 증가 등 부정적인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부산이 서울·수도권에 비해 청년 인구 감소세가 뚜렷한 인구 구성을 감안할 때 취약한 도시라고 분석한다. 향후 부산에서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심각하게 분출되면 쇠락하는 도시에 더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어서다.

신라대학교 손지현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산이 은둔형 외톨이 관련 조례 제정이나 실태조사 등은 타 지자체에 비해 빨랐지만 기본계획이나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는 여전히 늦은 편”이라며 “지난해 설문조사 결과 부산의 은둔형 외톨이 중 81%가 20대 청년으로 확인된 만큼 시의성 있는 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손희문·조영미 기자, 이와사키 사야카 서일본신문 기자 moonsla@busan.com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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