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사람, 김동수 박사님 영전에 올립니다

입력 : 2023-05-30 23:36:50 수정 : 2023-05-31 0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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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핵의학과 내분비학을 개척한 선구자이자 시민운동 원로로 활약한 고 김동수 박사를 기리는 추모의 글을 박철 목사가 보내왔다. 6월 1일 고인을 떠나보내는 추모식에서 낭독할 내용이다. 그 글을 싣는다.

고 김동수 박사. 부산일보 DB 고 김동수 박사. 부산일보 DB

김동수 박사님, 그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시며 살아오신 탓에 지치고 힘드신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별안간 세상을 떠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만난 박사님은 일체의 가식과 꾸밈을 거북하게 여기시는 분이셨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몇 자 작별의 말씀을 올리게 된 것에 괜한 짓을 한다고 나무라지 마시고 너그럽게 혜량(惠諒)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사님은 예수의 정신으로 칭칭 동여매고 사는 분이셨습니다. 그 배경에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앙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합니다. 일평생 예수사랑과 이웃사랑을 몸으로 살아내셨습니다.

6·25전쟁 때 부산에 피난을 내려오셔서 천신만고 끝에 의사가 되어 오랜 세월 의술을 펴오시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내셨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큰 부와 명예를 이루실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신은 최소한의 사치도 용납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말 따로 행동 따로가 아니라 시종여일하게 말과 행동이 같으셨습니다. 그 속이 우물처럼 깊어 언제나 맑고 투명하셨습니다. 바람 부는 날 풍경소리처럼 청아한 울림을 주셨습니다. 아무 말씀을 하지 않고 옆에만 있어도 은은한 향기를 풍기셨습니다.

박사님은 자신의 목소리를 주장하지 않았지만 남보다 한 발자국 앞서서 행동하는 지식인이셨습니다. 어떤 인연이든 한번 맺은 관계는 지속하셨고,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요청을 거절하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북녘땅 가난한 인민들을 위하여 항생제 공장을 짓고 지원하는 일에도 헌신적이셨습니다.

98년 긴 생의 강을 힘겹게 건너오신 김동수 박사님, 우리가 어찌 당신의 그 힘겨운 생의 행로를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가시밭의 고생길을 한 번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불평조차 사치스러운 일로 여기시며 희생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체구는 작으셨지만 바위를 뚫고 우뚝 서 있는 소나무같이 당당하고 강인하셨습니다.

오늘 생(生) 사(死)의 경계에서 당신이 마지막 가시는 길, 인간 김동수를 흠모하고 추억합니다. 당신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부산 민주화운동에 김동수라는 이름 석 자를 잃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김동수라는 큰 어른을 떠나보냅니다. 당신을 떠나보내게 되어 매우 아쉽습니다.

6·25전쟁이 터지자 피난 길의 사리원에 이르러 박사님이 척추후만증으로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어 어머니와 영영 헤어지면서 했다는 말씀, “어머니, 더 이상은 못 걷겠으니 어머니께서 동생들을 데리고 먼저 떠나십시오.” 그 말이 참 아리고 아픕니다. 이제 천국에서 일평생 그리워하셨던 아버님과 어머님을 만나시겠지요. 사랑하는 사모님과 영원한 스승 장기려 박사님도 만나시겠지요.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그러니 크게 웃으시고 굽었던 허리도 쭉 펴십시오. 시원하시겠습니다.

김동수 박사님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에게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이 많습니다. 박사님을 많이 그리워할 거 같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2023년 6월 1일 박철(샘터교회 원로목사) 올림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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