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갈등으로 시공사가 이미 입주를 시작한 부산 영도구 동삼동 ‘오션라이프 에일린의 뜰’ 조합원 가구 현관문을 쇠봉으로 차단해 유치권을 행사(부산일보 지난 4일 자 13면 보도)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최근 원자잿값 폭등으로 부산 정비사업장 곳곳에서 공사비 인상을 두고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첨예하고 빚어지고 있어 정비업계는 이 같은 사례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아이에스동서는 영도구 동삼2구역 주택재개발사업 조합원 219가구에 대해 추가 공사비 171억 원에 대한 협상이 진척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최근 유치권을 행사했다. 양측은 2017년 2100억 원 규모의 시공 계약을 맺었다. 2020년 물가상승 등을 이유로 공사비를 340억 원을 더 인상하기로 했다. 당시 아이에스동서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171억 원도 추가로 요구했지만 조합은 이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며 시공사와 대립해 왔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지난달 30일 입주가 시작되자 시공사에서 유치권을 행사한 것이다.
오는 11월 앞둔 부산 연제구 거제2구역 주택재개발사업 조합(레이카운티)은 시공단으로부터 추가 공사비 580억 원 인상을 요구받았다. 조합 측은 공사비 인상이 부당하다며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진행했다. 한국부동산원은 524억 원의 공사비를 인정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열린 총회에서 조합원들이 ‘추가 공사비 책정이 과도하다’고 반대, 공사비 인상안이 부결됐다. 이에 시공단은 공사비 인상이 없을 경우 조합원들의 입주 제한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션라이프 에일린의 뜰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셈이다.
공사비용이 가파르게 오른 만큼 시공사와 조합의 공사비를 둔 갈등은 점점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일반 분양을 마친 이후 추가 공사비가 발생하면 조합이나 시공사가 부담해야 해 조합과 시공사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셈이다. 특히 2020년 분양을 하고 올해나 내년에 입주하는 정비사업장들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12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17이었고 2020년 121, 2021년 138, 2022년 148을 기록했다. 2020년에서 2021년 사이 17포인트(P), 2021년과 2022년 사이 10P 올랐다. 계약 이후 최근 2~3년간 공사비가 치솟으면서 추가 공사비 발생 요인이 커졌다.
부동산서베이에 따르면 부산에서 2020년 분양한 정비사업장은 모두 10곳, 1만 5000여 가구다. 영도구 오션라이프 에일린의 뜰은 2020년 8월, 연제구 레이카운티도 2020년 9월에 분양했다.
부동산서베이 이영래 대표는 “당시 부동산 경기가 좋아 많은 정비사업장에서 서둘러 분양한 뒤 공사를 진행했는데 이후 공사비가 급격히 올라 이를 두고 갈등이 일어나는 곳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비 인상을 두고 조합원들 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 사업비를 인상하는 만큼 조합원의 이익이 줄어든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추가 공사비를 내고 속도를 택하느냐, 추가 분담금을 내지 않고 협상을 끌고 가느냐를 두고 조합과 시공사가 줄다리기를 하는데 급한 건 조합이다”며 “문제는 조합 집행부가 이를 수용하더라도 조합원들이 반대하고 나서면 조합 집행부 해산 등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공사비 오르면서 시공사의 사업 포기도 잇따른다.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 인근 촉진 2-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은 지난달 17일 임시 총회를 열고 시공사인 GS건설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2015년 가계약 당시 공사비는 3.3㎡당 549만 원이었다. GS건설은 최근 공사비용 상승, 공사 난이도 등을 이유로 987만 원으로 올려줄 것으로 요구했고, 조합 측은 807만 원을 제시해 협의에 나섰지만 결국 결렬됐다.
동구 초량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오는 8월 정기총회를 열고 시공사 호반건설과의 계약을 해지할 예정이다. 호반건설 측이 운영비와 사업비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호반건설은 공사비 상승, 분양 전망 저하 등으로 사업성이 낮아져 설계 변경 등을 통해 사업성을 올릴 수 없을 경우 사업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급격한 공사비 상승으로 조합과 시공사의 간극을 좁히기 어려운 사업장이 많아 정비사업 진행이 순조롭지 못한 곳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