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소금 뿌리기

입력 : 2023-09-04 18: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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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소금은 언제나 함께였다. 소금이 지닌 효능 중 소독과 살균, 지혈 작용이 있다. 웬만한 목욕탕에는 양치질용 소금을 쟁여 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세 유럽에서는 상처를 입은 병사들의 상처를 소독하는 데 소금을 사용했다. 고대 마야 시대에는 소금에 기름과 꿀 등을 섞어 간질약이나 출산용 진통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미천왕이 즉위하기 전에 왕손의 신분을 감추고 압록강 일대에서 소금장사를 하며 화를 면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조선시대까지 소금은 바닷물을 끓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자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닷물을 직접 끓이거나, 바닷물을 갯벌에 가두어 염분 농도를 높인 후 그 물을 솥에 끓여서 소금을 만들기도 했다. 부산 낙동강 하구의 명지 자염이 영남 일대에서 유명한 소금이었다.

태양열로 바닷물을 건조하여 만든 천일염은 일제 통감부가 1907년 대만과 중국의 소금 제조 방식을 한반도에 들여오면서 시작됐다. 인천의 주안염전이 최초이다. 일제 시절 북한 지역에는 대동강 하구의 평안남도 광양만염전, 황해도 연백염전 등이, 남한에서는 충청도 안면도, 전남 무안, 신안, 목포 등에 염전이 잇따라 축조됐다. 김치, 젓갈, 간장, 된장 등 소금을 이용한 절임 음식이 주를 이루는 한국에서 천일염은 최고의 식재료다. 한반도에서는 1930년대 들어 일본 경제가 중일전쟁을 준비하는 등 전시경제체제로 들어가면서 천일염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비료와 소다, 전쟁 무기 등 중화학공업 원료로 공업용 소금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런 천일염이 또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격이 지난해보다 배 이상 뛰고, 직거래 물량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비축 소금을 긴급 방출할 정도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전후에 소비자들이 ‘오염되지 않은 천일염’을 미리 사두자는 사재기 심리가 팽배했고, 지난 정권에서 서해안 염전이 태양광 시설로 대거 바뀌면서 생산량이 준 복합적인 탓이라고 한다.

어떤 이유라도 소금으로 상징되는 국민 우려에 대한 위기관리가 시급하지만, 정작 여야 정치권은 민생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방탄용 단식과 철 지난 이념 논쟁만 벌이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나라 옛 풍습에는 진상 손님이 왔다 가면 대문 밖에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 더러움을 씻고, 재앙을 물리친다는 의미다. 이쯤 되면 정치판에 소금이라도 뿌려야 속이 시원하지 않을까.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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