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아파트 매매 가격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반등하지만 부산은 여전히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아파트 가격이 내린 곳은 부산, 전남, 제주도뿐이다. 부동산 호황기 때 부산에 수요보다 많은 물량이 공급됐고, 최근 대규모 입주장까지 겹쳐 가격 하락이 이어진다.
24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부산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90.9로 한 달 전보다 0.06% 하락했다. 반면 전국은 93.2로 0.35% 상승했다. 서울은 93.8로 0.5%, 경기도는 92.2로 0.69% 올랐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지난 5월 상승세로 전환한 이후 전국의 아파트 가격도 지난 7월부터 오름세를 탔지만, 부산은 여전히 침체기에 빠졌다.
부산의 가격 하락세는 특히 영도구, 사상구, 동구, 사하구에서 두드러진다. 부동산 빅데이터 기업 ‘부동산지인’에 따르면 지난 7~9월 아파트 매매 가격이 가장 많이 하락한 전국 10개 시군구에 네 지역이 모두 포함됐다. 영도구(-1.65%), 사상구(-1.64%), 동구(-1.59%)가 차례로 4~6위에 올랐고, 사하구(-1.27%)는 9위를 기록했다. 가격 하락이 심각했던 대구도 2개 구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산의 두드러진 하락세를 체감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대도시 중 유일하게 부산만 하락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부동산 호황기 때 많은 아파트 단지의 분양과 입주가 몰려 물량이 쌓인 데다 최근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잇단 입주로 시장에 물량이 크게 풀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부동산지인이 인구 순유입, 순유출, 연령대별 구성 등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하락률 4위를 기록한 영도구의 경우 매년 550가구가 적정 공급량이다. 하지만 지난해 1370가구, 올해 1280가구가 공급됐다. 여기에 지난 6월 ‘오션라이프 에일린의뜰 1·2단지’ 등 대단지들이 입주를 시작하는 등 아직 입주장의 여파도 남은 상황이다. 보통 대규모 단지의 입주장에는 임대, 매도 물량이 몰리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사상구의 상황도 비슷하다. 사상구의 적정 공급량은 1030가구인데 지난해 2097가구, 올해 1971가구가 공급돼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상태다. 사상구 역시 지난 7월 1500가구 규모의 사상중흥S클래스 그랜드센트럴 등이 입주를 시작해 시장에 물량이 많은 상태다.
부동산지인 정민하 대표는 “부동산 호황기에 시장성이 좋았던 부산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많은 물량이 공급됐다”며 “영도구의 경우에는 인구 유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물량이 과다 공급돼 하락 현상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많은 공급과 매매 가격 하락은 미분양 우려도 높인다. 부산시의 ‘2023년 8월 미분양 주택 현황’에 따르면 부산의 미분양 물량은 2343가구다. 1년 전인 2022년 8월 미분양 1799가구보다 544가구 늘었다.
특히 소규모 단지의 미분양 우려가 큰 상황이다. 지난 8월 미분양 주택 현황에 따르면 동구 범일동에서 분양된 ‘범일역 신화하니엘 팔라시오’의 경우 232가구 중 214가구가 미분양 물량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부동산 중개거래 플랫폼인 부동산서베이 이영래 대표는 “금리가 높고,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다 보니 수요자들이 아파트 매매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며 “공사비가 올라 분양가 역시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데 소규모 단지일수록 분양가 민감도가 더 크다”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