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산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 모(46) 씨는 올해 해운대구로 이사를 가려다 결국 포기했다. 현재 소유한 아파트 가격은 2년째 하락하고 있지만, 구입을 고려한 해운대 아파트 가격은 올 초보다 오히려 올랐다. 이 씨는 “30평대인 내 집은 2년 전보다 1억 원 이상 내린 5억 원밖에 안되는데, 해운대구 24평 아파트 가격은 올 초보다 5000만 원 이상 올라 8억 원이 넘는다”며 “지금도 주택담보대출을 갚고 있다. 3억여 원을 더 대출받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이사 계획을 접었다”고 말했다.
부산의 집값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중위소득가구가 고가 아파트로 갈 수 있는 ‘주거 사다리’ 자체가 끊어질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이 2일 발표한 ‘10월 5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부산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0.04% 떨어져 하락세를 이어갔다. 2022년 6월 3주 이후 1년 4개월가량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하락세인데, 세부적으로는 한 번이라도 반등한 곳과 계속 떨어지는 곳으로 나뉜다. 고가 아파트가 몰린 ‘해수동남(해운대구·수영구·동래구·남구)’은 지난 9월 반등한 후 상승과 하락을 오가고 있다. 반면 영도구·사하구 등은 반등 없이 계속 내리고 있고, 하락 폭 또한 크다. 지난 9월 남구의 아파트 가격은 0.19% 올라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지만, 영도구는 -0.94%로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이러한 최근 추세는 고가와 중저가 아파트의 가격 차이를 더 키우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기업 ‘부동산지인’에 따르면 지난 1~9월 부산의 아파트 가격 상위 20%인 5분위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1.13% 상승한 반면, 4분위는 -2.38%, 3분위는 -4.08%, 2분위는 -5.13%, 1분위는 -5.37%를 기록했다. 여전한 하락장에서 1·2분위 저가 아파트 가격의 낙폭은 여전히 크지만, 고가 아파트들은 가격 방어를 넘어 반등하고 있다.
부동산지인 정민하 대표는 “부산 부동산 시장이 전체적으로는 침체기이지만, 고가 아파트들은 ‘지금쯤이면 충분히 하락했고 언젠가는 오른다’는 생각에 매수자가 늘며 가격이 반등했다. 반면 1~3분위 아파트들은 여전히 매수자가 없어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양극화가 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양극화 탓에 근로소득자가 상급지로 이동하는 주거 사다리가 끊기는 현상이 수도권은 물론 부산에서도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로 부산의 주택구입물량지수는 매년 낮아지는 추세다. 이 지수는 중위소득가구가 보유한 순자산과 소득을 기준으로 대출을 받았을 때 살 수 있는 해당 지역의 아파트 비율을 나타낸 수치다. 부산의 주택구입물량지수는 2019년 66.1이었지만, 2022년엔 44.6으로 떨어졌다. 2019년엔 부산의 중위소득가구가 대출을 끼면 100채 중 66채를 살 수 있었지만, 지난해엔 44~45채에 그쳤다는 의미다.
부동산 중개거래 플랫폼 ‘부동산서베이’ 이영래 대표는 “아파트 가격이 몇년 전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뛴 데다 중위소득가구 자체의 소득은 늘지 못해 주택구입물량지수가 낮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