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산업인 조선업 부활에 힘입어 겨우 기지개를 켜던 경남 거제시 아파트 분양시장이 다시 움츠러들고 있다. 100%를 훌쩍 넘는 주택보급률에다 고금리 여파로 수요는 계속 줄어드는 데 공급은 되레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다. 주택 시장 전체가 다시 빙하기를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공급량 조절을 위한 행정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제시에 따르면 9월 기준 관내 미분양 아파트는 8개 단지 919세대다. 이 중 372세대는 모두 준공 후에도 주인을 찾지 못한 ‘악성 재고’다. 주택보급률이 123%에 달해 실수요가 많지 않은 상황에 고금리 기조 장기화와 고분양가 논란 등이 겹치면서 분양은커녕 청약조차 꺼리는 분위기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 지난 14일 1순위 청약을 진행한 아주동 한 단지는 221세대 중 단 1세대 신청서가 들어왔다. 특별공급도 1세대 접수됐다. 이보다 앞서 분양한 또 다른 547세대 단지도 1순위 청약이 미달했다. 비슷한 시기 신청자를 받은 장승포 299세대 역시 지금까지 미분양 상태다.
여기에 허가를 받고도 첫 삽을 뜨지 못한 단지가 8곳 7126세대다. 건축비 상승으로 분양가를 낮출 수 없는 상황에 섣불리 착공했다간 금융비용 증가와 브랜드 가치마저 훼손돼 회복 불능 지경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개발 붐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옥포동 옛 대우조선해양사원아파트 부지(1963세대)가 사업 승인 마무리 단계다. 고현항 항만재개발사업 3단지(659세대)도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합치면 공급 대기 중인 물량만 9748세대다.
한때 ‘불패 신화’란 수식어가 붙을 만큼 호황을 누렸던 거제 아파트 분양 시장은 조선업 불황과 함께 거품이 빠지면서 곤두박질쳤다. 2017년 미분양 물량이 2000세대에 육박하며 그해 2월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됐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아파트 시세는 반토막 났다.
그러다 2021년을 기점으로 부동산 시장에도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거제에 사업장을 둔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나란히 초호황기에 버금가는 수주 실적을 기록하고 남부내륙철도, 가덕신공항 등 각종 호재까지 잇따른 덕분이다.
특히 신축 아파트의 경우, 실입주는 2~3년 뒤라 때마침 도래할 조선업 호황과 맞물려 프리미엄을 챙길 수 있다는 판단에 외지 투자 수요까지 몰렸다. 고현동 거제유로스카이 1113세대, 상동 거제더샾디클리브 1288세대 등 대단위 단지도 줄줄이 ‘완판’ 됐다.
골칫덩이 미분양도 빠르게 소진돼 작년 1월 미분양관리지역에서 해제됐다. 지정 4년 10개월 만이다.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다시 꼬리표를 달아야 할 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급 과잉에 따른 동반 가격 폭락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거제시 부동산거래 동향 자료를 보면, 지역 아파트 매매가격은 작년 9월 이후 줄곧 내림세다. 2021년 6월 매매가를 기준으로 올해 9월까지 15.27%나 떨어졌다. 때문에 시가 나서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주택건설계획 승인을 보류하는 등 공급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앞선 완판 단지의 경우, 실수요보다 수도권 규제 강화에 대한 풍선효과로 외지인 투자 수요가 집중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고금리에 대출 이자 부담이 커져 실수요자마저 청약을 꺼리는 만큼 행정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짚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