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정부 모바일신분증을 안내하는 웹사이트와 앱이 모두 장애를 일으켜 7시간 가까이 먹통 사태를 빚는 등 최근 잇따른 행정 전산망 장애를 계기로 정부가 10년 만에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참여 제한을 풀기 위한 제도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사태로 대기업 참여 대상 사업을 기존 계획보다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2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소프트웨어업계에 따르면, 현재 과기정통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의 입찰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올해 초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은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의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를 규제 개선 과제로 선정하고 과기정통부, 업계 등과 논의해 왔다. 이에 따라 과기정통부는 지난 6월 말 토론회에서 시스템 복잡도가 높고 기술적으로 고난도인 1000억 원 이상의 사업에 대해 대기업 참여를 허용한다는 내용의 개선안을 공개했다.
현재 과기정통부는 당시 개선안에서 제시한 사업 금액 기준(1000억 원 이상)보다 기준을 낮춰 더 낮은 금액의 공공 SW 사업에 대해서도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잇따른 행정 전산망 장애 사태로 법 개정 작업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는 최근 발생한 행정 전산망 서비스 장애와 관련해 대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간 준비했던 공공 SW사업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의 개선을 조속히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행 소프트웨어진흥법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상출집단)에 속하는 대기업에 대해 사업 금액과 관계 없이 입찰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상출집단 자산총액 기준은 2016년에 기존 5조 원 이상에서 10조 원 이상으로 상향됐다.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법은 2013년부터 시행돼 올해 10년째를 맞았다. 공공 시장의 대기업 쏠림 현상을 막고, 중소·중견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였다.
대기업이 수주한 일감을 중소기업에 하청(아웃소싱)하고, 중소기업은 또 재하청을 주는 구조로 변질하면서 대기업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도 법 개정의 이유로 작용했다.
현행법에서는 국방, 외교, 치안, 전력(電力), 국가안보 등과 관련된 사업 가운데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이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되는 사업의 경우 등만을 예외로 두고 있다.
이러다 보니 공공 소프트웨어 구축에서 대기업 참여를 제한해온 제도가 정부 행정 전산망 장애가 발생할 때마다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되곤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술 격차가 줄지 않아 중소업체가 구축한 공공 전산망이 자주 장애를 일으킨다는 논리다.
또 대기업 배제로 영세업체를 대상으로 한 쪼개기 발주가 남발하고, 문제 발생 시 신속한 원인 파악과 위기 대응 측면에서도 취약점을 노출해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의 참여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기업인 SK주식회사 C&C가 컨소시엄을 꾸린 우정사업본부 차세대 금융 시스템 구축 사업과 LG CNS가 개발을 맡았던 차세대 사회보장 정보시스템도 개통 직후 대규모 서비스 장애를 일으킨 선례가 있다.
또 대기업이 정보기술(IT) 계열사를 세우고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시하며 그룹 내 일감을 몰아주던 관행에서 비롯된 국내 시스템통합(SI) 사업 방식의 폐단이 더욱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IT 서비스 시장은 모든 업종 가운데 내부 거래 비중이 가장 높은 폐쇄적 시장 구조와 하도급 관행이 유지되고 있고,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이 중소·중견기업의 유일한 공개입찰 시장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기업 참여 제한이 잇따르는 오류 사태의 본질적 원인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프트웨어산업협회 안홍준 산업정책실장은 "대기업의 참여 제한은 행정 전산망 장애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며 "기본적으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관련 예산을 증액해야 하고, 과업이 너무 자주 변경되면서 품질이 낮아지는 관리 차원의 문제가 더욱 크다"는 견해를 밝혔다.
정부가 최저가 입찰제 대신 혁신 기술 등을 먼저 고려할 수 있도록 IT 프로젝트 입찰제를 바꿨지만, 여전히 가격이 당락을 결정하는 구조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