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부산 북구 화명동의 신축 아파트를 4억 원에 전세로 내놨던 김 모(72) 씨는 최근 보증금 3억 6000만 원에 두 번째 세입자를 구했다. 반년간 세입자를 구해봤으나 문의조차 오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4000만 원을 신용대출 받아 새로운 전세 계약을 맺었다. 김 씨는 “부동산 경기가 안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화명신도시에 귀한 물건인 신축 아파트의 전세 가격이 입주장 때보다 떨어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수영구에서 아파트 전세를 놓고 있던 박 모(54) 씨도 급락한 전셋값 탓에 곤욕을 치렀다. 만기를 5개월 앞두고 세입자가 “계약을 2년 갱신하는 대신 시세와의 차액을 당장 내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절충이 가능한 액수로 합의를 봐 돈을 내어 주는 것으로 급한 불은 껐다”면서도 “갑작스레 신규 대출을 받은 탓에 가계에 부담이 커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11~12월 9000여 세대에 달하는 신규 입주 물량이 부산에 쏟아지면서 전세 시세가 보증금보다 적은 ‘역전세’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역전세에 불안을 느껴 전세 보증 보험에 가입하는 세입자들도 크게 늘었고, 보증금을 돌려 주지 못한 ‘보증 사고’는 전년 대비 4배나 폭증했다.
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연제구 레이카운티 4470세대가 입주를 시작했고, 북구 포레나 부산덕천2차 795세대도 입주가 진행 중이다.
이달에는 2195세대 규모의 부산진구 백양산롯데캐슬골드센트럴과 남구 더비치푸르지오써밋(1384세대), 수영구 힐스테이트남천역더퍼스트(217세대) 등이 줄줄이 입주를 앞두고 있다. 올 11~12월 신규 입주 물량을 합하면 9061세대에 이른다.
게다가 2021년 12월 입주를 시작했던 3853세대 규모의 동래래미안아이파크도 전세기간 만료가 순차적으로 돌아오고 있다. 시기상 고점에서 전세 계약이 진행됐던 사례가 적지 않기에 역전세 현상에 대한 압박은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1년 10월 2억 354만 원이던 부산지역 평균 전세가격은 올해 10월 1억 7288만 원으로 15%가량 감소했다. 특히 동부산권의 경우 2021년 10월 평균 2억 4799만 원이던 전세가격이 2억 674만 원으로 하락해 낙폭이 조금 더 컸다.
부동산서베이 이영래 대표는 “한 두달 사이에 이런 정도의 입주 물량이라면 지역 전세 시장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며 “3800여 세대 대단지 아파트의 입주 2년 차가 도래하는 동래구의 경우 충격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역전세 현상이 심화하는 데다 전세사기에 대한 우려가 커진 탓에 부산지역 전세 보증 보험 가입 숫자도 증가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올해 부산에서는 1만 5585세대가 2조 9755억 원 상당의 전세 보증 보험을 신청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만 743세대와 비교하면 50%나 증가한 수치다.
역전세 등 영향으로 집주인이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못한 보증 사고 건수는 4배가량 폭증했다. 부산에서만 올해 10월까지 340세대에 706억 원의 보증 사고가 있었고 주택보증공사에서는 302세대에게 627억 원을 대신 지급하는 대위 변제를 진행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 76세대 137억 원의 보증 사고와 비교하면 역전세로 인한 사고 발생 증가가 확연히 드러난다.
전국적으로 보증보험 가입 세대수는 지난 10월까지 총 26만 3707세대로 지난해 같은 시기 19만 2630세대보다 7만 세대가량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총 보증보험 발급 실적인 23만 7797가구보다도 많은 수치다. 전국 보증 사고 건수는 지난달까지 총 1만 5833건으로 사고액수만 3조 5565억 원에 달한다. 반면 지난해 같은 기간 보증 사고는 총 3754건, 사고금액은 7992억 원으로 조사됐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