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 뛰고, 직원 내보내고… ‘거래절벽’서 발버둥 치는 공인중개사

입력 : 2023-12-11 18:59:00 수정 : 2023-12-11 18: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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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시험 응시자 7년 만에 최저
부산서 올해 개업보다 폐업 많아
중개업소에 거래 문의 뚝 끊겨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폐업을 하거나 개업을 미루는 공인중개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민들이 부산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을 지나가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폐업을 하거나 개업을 미루는 공인중개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민들이 부산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을 지나가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부산 부산진구에서 10년 가까이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A 씨는 최근 저녁마다 배달대행업을 뛰고 있다. A 씨는 “매매든 전세든 거래가 있어야 수입이 생기는데, 요즘에는 문의조차 잘 오지 않는다”며 “생계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투잡’을 선택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휴업이나 폐업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 침체 장기화로 공인중개사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한때 ‘중년의 고시’ ‘제2의 수능’이라 불렸던 자격시험 인기도 확 꺾였다.

11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부산지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날까지 부산에서 개업한 공인중개사는 845명인데 반해 폐업한 이는 978명으로 조사됐다. 폐업이 개업보다 15%가량 많은 수준인데, 이 같은 감소세는 지난해 8월부터 이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올 들어 폐업한 부동산 중개업소는 1만 586개로 개업한 부동산인 9611개를 넘어섰다. 부동산 경기에 따라 중개업소 개·폐업 추세가 오르내리긴 했지만, 전국 단위에서 폐업이 개업을 앞지른 건 올해가 처음이다.

올해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응시자와 합격자 수는 2016년 이후 7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을 기록할 정도였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 10월 치러져 최근 합격자를 발표한 제34회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엔 1·2차를 합쳐 모두 28만 7756명이 신청해 20만 59명이 실제로 응시했으며 이중 총 4만 2615명이 합격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시험 신청자는 10만 명 이상 줄었고, 1·2차를 합친 합격자는 2만 명 가까이 적어졌다. 부산의 경우 합격자 숫자가 1065명으로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부산지부 관계자는 “부동산업은 경기 변동이나 시장 상황과 직결돼 있는데 부동산 침체기가 길어지다 보니 이를 견디지 못한 중개사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금리 인하 등 외부적 요인이 바뀌어서 시장이 살아나야지만 업황이 정상화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숍인숍’ 형태로 업소를 유지하는 사례도 나온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붕어빵이나 커피, 로또 등을 팔거나 꽃집 등을 함께 운영하며 부수입을 창출하는 것이다. 월세를 조금이라도 보전하면서 잠재 고객들의 발길을 이끄는 궁여지책이다.

부산 연제구의 공인중개사 B 씨는 “목 좋은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탓에 월세가 만만치 않아 업종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일손이 몰릴 때 함께 일하던 직원도 올해부터는 아예 나오지 말라고 했다”며 “요즘은 연락이 오기 전까지 사무실에 잘 나가 있지도 않는다. 지나가다 부동산에 들르는 고객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세 사기에 가담하거나 연루된 일부 공인중개사들의 행태도 업계의 날개를 꺾은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매도자와 매수자가 온라인에서 만나 직접 거래하는 직거래 플랫폼이 활성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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