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나가서 그물만 던져도 한가득 잡을 만큼 차고 넘치는데 손 놓고 있으려니 환장할 노릇이죠.”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오전 10시께 경남 통영시 동호항 물양장. 통영수협 위판장 앞 곧게 뻗은 계류장 한편을 덩치 큰 어선들이 차지했다. 2척이 팀을 이뤄 조업하는 쌍끌이 저인망어선이다. 80t급 대형 1개 선단에 59t급 중형쌍끌이 3개 선단, 총 8척. 평소라면 욕지도 아래 국도 인근에서 거친 풍랑에 맞서 조업이 한창일 시각이지만, 출항은커녕 아직 채비조차 안 한 모습이다. 선주 김덕철 씨는 “원래라면 명절 쇠고 바로 나서야 하는데, ‘총허용어획량(TAC)’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면서 “새 할당량이 정해질 때까지 꼼짝없이 이러고 있어야 할 듯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남해 먼바다에서 삼치를 잡는 부산‧경남 중‧대형기선저인망업계가 정초부터 조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 이례적인 삼치 풍어에 너무 일찍 TAC 할당량을 초과하면서 일부 선단은 4개월 넘게 손을 놀려야 할 판이다. 업계에선 현실과 동떨어진 TAC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부산과 경남지역 쌍끌이 저인망 45개 선단이 설 연휴 이후 출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TAC 탓에 주 포획 어종인 삼치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TAC(Total Allowable Catch)는 수산자원 고갈을 막기 위해 연간 어획량 한도를 정하고 업종별로 할당하는 제도다. 위반 시 500만 원 이하 벌금과 어업정지명령 등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삼치는 2022년 TAC 관리 어종에 포함됐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7월, 저인망과 대형선망 업계에 올해 6월까지 1년간 잡을 삼치 총량으로 2만 7253t을 배정했다. 그런데 작년과 올해 삼치 어획량이 크게 늘면서 일이 꼬였다. 대다수 선단이 이달을 전후해 할당량을 채워버렸다. 지금부터 삼치를 잡으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저인망 선단 입장에선 조업 중지 명령이나 다름없다. 대형 끌그물로 조업하는 탓에 삼치만 빼고 잡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어획물 중 70% 이상이 삼치다. 나머지는 이 과정에 혼획되는 것들이고 그물코가 커 작은 것들은 잘 잡히지도 않는다”면서 “기름값도 안 되는 잡어 잡으려 고생하느니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하소연했다.
할당량을 새로 배정받으려면 7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5~6월이 삼치 금어기라 TAC가 아니라도 휴어기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실제 조업을 못 하는 기간은 2개월하고 보름 정도가 되는 셈이다. 어민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TAC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다. 현행 TAC는 전년도 어획실적과 선단 규모(톤수)를 고려해 선단별 할당량을 결정한다. 앞서 많이 잡아야 이후에도 많은 양을 배정받을 수 있는 구조다. 한 어민은 “적게 잡는 배는 평생 적게 잡으란 소리다. TAC 취지를 볼 때 한해 많이 잡은 배는 적게, 적게 잡은 배는 많이 할당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할당량도 그해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조절해야 한다”고 짚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업계는 13일 긴급 선장 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이어 대형기선저인망수협 등 어민단체가 나서 해양수산부를 방문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어민들 뜻을 모아 정부에 대응책 마련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