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캐피탈(VC)의 투자가 1000억 원 넘게 줄고 투자 건수가 감소하면서 관련 업계가 위기에 빠졌다. 수도권에 비해 투자 생태계 기반이 약한 부산엔 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이 때문에 건강한 지역 창업 투자 생태계 조성을 위한 지자체 차원의 맞춤형 전략과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익성만 쫓는 VC, 이러다 다 죽어
지난해 창업한 플랫폼 관련 A사는 창업 전부터 투자사들로부터 자금을 지원하고 싶다며 ‘러브콜’을 받았다. 펫 비즈니스라는 특화 아이템으로 지역의 반려인을 연결하고, 펫 산업 제조업체들 간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 마진을 줄인 공동구매 플랫폼을 만든다는 A사의 계획은 투자사의 구미를 당겼다. 창업 이후 플랫폼 가입 회원 수는 1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이 업체의 대표는 “특히 IT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가 주춤하는 분위기다. 어렵사리 잡은 미팅에서도 첫마디가 시장이 얼어붙어 투자가 어렵다는 말이었다”면서 “기업의 미래 가치보다 매출을 바로 발생시킬 수 있는가가 투자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A업체는 플랫폼 운영에서 펫 관련 아이템 생산으로 아이템 변경을 고려 중이다.
제조 분야 스타트업도 투자 받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헬스케어 제품 생산업체 B 대표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매출이나 재무 상태를 보고 투자가 결정된다”며 “우리 같은 신생 스타트업은 투자를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출로 직원 월급을 주며 적자 상태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출이 없는 시기의 기업을 도와줘야 할 VC가 매출을 보고 투자를 한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악화일로 지역 투자 생태계
VC의 투자가 얼어붙은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경기 침체다. 물가상승에 금리 인상까지 겹쳐 투자심리는 더 위축됐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의 조사에서도 VC업계의 실상은 여실히 드러난다. 전체 신규 투자 금액은 2021년 이후 3년 연속 줄었다. 특히 지난해 감소 폭이 컸다. 지난해 신규 투자 금액은 5조 3977억 원으로, 2022년 6조 7640억 원에 비해 25.3%나 줄었다. 신규 펀드도 290개로 전년 380개보다 23% 줄었다.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VC업계는 형편이 더 좋지 않다.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이 본사인 창업투자사는 모두 11곳이다. 2008년 설립된 메이플파트너스, 비케이인베스트먼트 등이다. 그러나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투자사는 8곳이다. 엠오벤처스·비브이인베스트먼트는 등록을 말소했고, 티에스피벤처투자는 사명을 바꾸고 인천으로 옮겨갔다. 벤처투자회사 전자공시(DIVA)에 따르면, 부산 VC의 지난해 실제 투자 건수는 24건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투자사 중 투자 건수가 1건인 곳은 2곳, 한 번도 투자를 진행하지 않은 곳도 2곳이나 된다.
업계에서는 안전한 수익을 위해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기업 지원금 사업에 VC 등이 운영 주체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VC들이 기업 발굴이 아닌 기관이 주는 일만 수행하며 단기적인 수익만을 좇는 게 건강한 투자 생태계라고 말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덩치만 키우는 게 답은 아니다
이달 초 중소벤처기업부는 모태펀드 출자에 9100억 원을 투입, 1조 7000억 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비수도권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지역 벤처펀드’에도 1000억 원을 출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에도 “변화를 체감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의료용품 관련 스타트업 C 대표는 “정부 자금은 계속 풀리는데 스타트업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잘나가는 기업에게 투자가 계속 몰리기 때문이다”면서 “자금만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건강한 투자 생태계 육성을 위한 맞춤형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동남권협의회 강석호 사무총장은 “‘창업 도시 부산’을 위해서는 부산창업청 설립, 창업박람회인 플라이 아시아 등 지자체 차원의 장기적인 정책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