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재난안전산업 분야 제조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A 대표는 걱정이 태산이다. 벤처캐피탈(VC)의 투자가 끊겨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A 대표는 “오랜 연구개발 끝에 이제 시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단계인데,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며 “몇 년전만 해도 우리 아이템이 가진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하겠다는 러브콜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하소연했다. 노인 관련 플랫폼을 준비 중인 스타트업 B 대표는 “몇 년의 연구개발 시간을 거쳐야 하는 스타트업에게 VC의 투자는 수익이 없는 시기에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생명줄과 같다”면서 “VC시장이 얼어 붙어 투자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사업을 접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부산지역 스타트업에 대한 VC의 투자 건수와 투자 금액이 대폭 감소하면서 지역 스타트업계가 고사 위기에 빠졌다. VC의 투자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마중물 역할을 하는데, VC 시장이 냉각되면서 투자가 급감한데다가 향후 나아질 전망조차 불투명해 ‘창업 도시 부산’의 위상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벤처투자 데이터베이스 전문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시 소재 스타트업이 VC 등에게 받은 투자 금액은 646억 5894만 원이다. 2022년 투자 금액인 1765억 6903만 원에 비해 무려 72.6% 줄었다. 금액으로 따지면 1100억 원이 넘게 줄어든 셈이다. 투자 건수도 3년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1년 61건, 2022년 54건에 비해 2023년은 38건에 불과하다. 전년 대비 29.6% 줄어든 셈이다.
VC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저금리 정책으로 투자 호황이 정점을 찍은 2021년 이후 계속 내리막을 걷고 있는 상태”라며 “글로벌 경기 침체, 고금리 장기화로 VC업계에 한파가 불어닥치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도 투자 시장이 상당 부분 위축됐다”고 말했다.
성장기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유니콘 기업(매출 1조 원 비상장기업)’으로 도약을 꿈꾸는 스타트업에게도 VC의 투자 감소는 악영향을 끼친다. 보통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공공기관에서 받는 소액의 성장 지원금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민간 차원에서의 큰 금액의 투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산 출신 디자이너로 가방·신발 등을 자체 제작하고 백화점 입점 경험까지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의 C 대표는 “수출 판로 확보, 글로벌 사업 확장, 대기업과의 협업 등 유니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VC의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라면서 “신제품 개발, 생산공장 부지 추가 확보 등 자금이 필요한 곳은 늘어나는데 고금리에 은행 문턱도 높아 대출도 힘들다. 여러 투자사에 문의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확답을 받은 곳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수도권에 비해 투자 생태계 기반이 부실한 지방은 VC의 투자 감소가 더 치명적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동남권협의회 강석호 사무총장은 “VC 시장의 한파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스타트업들은 단기적으로 ‘성장’보다는 ‘생존’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꾸려나가야 한다”면서 “부산시 등 지자체와 정부에서는 위기에 빠진 스타트업을 위한 긴급 지원 등은 물론 건강한 지역 창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