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12일 중국 다롄항을 출발해 충남 당진항으로 가던 한국 화물선 골든로즈호. 서해를 항해하던 이 배는 중국 컨테이너선에 들이받혀 조난신호조차 보내지 못한 채 빠르게 침몰했다. 충돌한 중국 선박이 구조에 나서기는커녕 뺑소니를 치는 바람에 한국인 7명을 포함한 골든로즈호 승선원 16명 모두 실종돼 나중에 6명의 시신만 발견됐다.
이와 달리 지난달 26일 새벽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항 인근에서 발생한 대형 컨테이너선의 교량 충돌·붕괴 사고는 신속한 조난신호 발신이 대규모 참사로 이어지는 것을 막은 경우다. 이날 볼티모어항을 출항한 싱가포르 컨테이너선이 퍼탭스코강 하구를 가로지르는 길이 2.6km, 왕복 4차로인 교량의 교각을 들이받아 다리 중심부 구간을 무너트렸다. 컨테이너선은 충돌 직전에 즉각 조난신호를 보냈고, 이를 접한 당국이 즉시 차량의 교량 진입을 차단하고 긴급 대피령과 함께 구조에 나서 큰 참사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사고 선박이 발신한 것은 ‘메이데이’(Mayday)를 3회 반복하는 조난신호였다. 메이데이는 프랑스어가 국제어로 통용되던 1900년대 “나를 도우러 와 주세요”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Venez m’aider’(브네 메데)의 뒷부분이 비슷한 발음의 영어로 옮겨진 용어다. 이는 전 세계에서 선박과 항공, 소방, 경찰 등 분야에서 위급 상황을 알릴 때 공통적으로 쓰는 무선 조난신호다. 훨씬 앞서 모스 부호를 통해 등장한 ‘SOS’와 함께 대표적인 긴급 구조요청 신호다. 미국에서 매년 5월 1일 기념하는 메이데이(May Day·노동절)도 있어서 조난 상황일 경우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 메이데이로 붙여서 세 번 외치는 게 국제 약속이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조난이나 재난 상황의 급박한 구조요청과는 성격은 다르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다급한 조난신호를 보내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에 시달리는 저소득층과 서민층, 무더기 전세 사기를 당한 젊은 층,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에 따른 의료 대란으로 고통이 가중된 환자와 가족 등이 발신자다. 정치인과 의사들은 왜 이들을 외면하는가?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딴 나라 얘기인가? 수많은 특권만 누리며 제 일을 하지 않는 국회의원, 자격과 자질은 없으나 그 자리가 욕심나 철면피한 행태를 보이는 총선 후보, 의사 수가 늘면 저만 돈 많이 벌고 잘사는 데 지장이 생길 걸 걱정하는 의사가 많아 보이고 답답해서 던지는 질문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