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7주째 계속되면서 환자는 갈등 장기화로 인한 피해를,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은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 발표에도 극적인 갈등 봉합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의료 현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주 90시간 격무에 번아웃”
2일 부산 의료계에 따르면 부산 지역 의대 교수들의 과반수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주 52시간 진료’에 돌입한다고 밝혔지만,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 대부분이 진료 현장을 지키고 있다. 전공의 공백으로 수련병원 전체가 수술 축소와 지연, 외래진료 차질을 겪고 있는 상황에 교수진마저 진료를 대폭 줄일 경우 환자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인제대 부산백병원 유방외과 김태현 교수(인제대 의대 교수협의회장)는 “유방암 등 중증환자가 찾아오는 상황에서 사실상 진료 시간을 줄이기 어렵다”며 “필수의료과의 경우 이번 사태 전에도 잦은 당직으로 최대 주 90시간까지 일한 교수가 있었는데 전공의가 떠난 이후 견딜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고 말했다.
응급 중증환자를 제일 처음 접하는 응급의학과 상황은 더 심각하다.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염석란 교수는 “응급의학과의 경우 주 52시간 근무를 하는 것 자체가 전혀 불가능하다”며 “방법이 없어서 하루하루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 다른 과의 경우에 현 상황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지만 응급의학과의 경우는 12~14시간 뺑뺑이 근무로 돌아가고 있어서 환자만 보기에도 벅차다”고 토로했다.
염 교수에 따르면 전문의들은 전공의들이 맡던 1차 진료까지 도맡게 되면서 현재 주 60시간에서 80시간 가까이 근무하고 있다. 염 교수는 “응급실 문을 닫을 순 없지만, 현 상태로는 도저히 유지가 불가능하다”며 “근무시간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두 달 가까이 의정 갈등이 지속되면서 남은 응급실 의료진이 버틸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수습본부(중수본)에 따르면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 44곳 중 진료 제한을 내건 곳이 3월 첫 주 10곳에서 3월 마지막 주 14곳으로 4곳이 늘었다.
■커지는 환자 피해, 만성화 막아야
지난해 위암 선고를 받은 60대 환자 정 모 씨는 진료 차질로 부산의 한 대학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고 있다. 정 씨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내 상태가 아니라 병실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입원할 수 있는 상황이 반복돼 매우 유감이다”며 “병원에 남은 의료진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지난 몇 달간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서 너무 지쳤다”고 전했다.
전날인 1일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 발표에도 의정 갈등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남은 의료진의 피로도는 높아지고, 환자 피해와 불편은 커질 대로 커졌다. 정부와 의사집단 모두 한 발씩 양보해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갈등 봉합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상반기 수련을 위해서는 인턴들이 2일까지 병원에 복귀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 중수본에 따르면 의대 졸업 후 인턴 수련을 예정한 2697명 중 인턴 수련을 등록한 인원이 10%가 채 되지 않는다.
이날 중수본 브리핑에서 보건복지부 전병왕 의료정책실장은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들이 복귀하고 집단행동이 아닌 합리적인 방법으로 증원 규모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정부는 언제든지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전국 33개 의대 교수협의회가 제기한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이 각하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 11부(부장판사 김준영)는 이날 오후 전국 의대 교수협의회 대표가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2025학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처분에 대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