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을 혁신하자는 목소리가 교육계 안팎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유난히 높아졌다. 특히 지방 대학이 문제다. 1970~80년대의 고도성장기에 무분별하게 설립허가를 내준 탓에 지방마다 대학이 너무 많은 데다, 6~17세의 학령인구는 갈수록 줄어든다. 사람, 산업, 기술의 수도권 집중은 심해져만 가고, 신산업을 중심으로 사회와 교육 사이의 울타리도 없어져 간다. 이런 시대에 전통적인 학과 단위의 교육과정만으로 대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여러 고민과 대안이 필요해졌다. 그중의 하나가 마이크로 전공이다. 전공과 전공 사이의 벽을 허물고 시대 요구에 맞게 프로젝트식의 융합 교육을 하자는 주장이다. 대학교육이라고 대학에만 맡겨두지 말고 지자체와 지역 사회가 대학교육의 주체로 같이 나서자는 제안이다. 교육과정을 유연화하여 학교의 특성에 맞는 6~12학점의 모듈식 전공을 교육과정에 여럿 집어넣고, 융복합 교육과 함께 특정 분야의 전공능력을 고도화하자는 시도이다. 이런 실험은 덕성여대, 고려대, 한양대 등 서울에서 오히려 먼저 시작하여 점차 지방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위기 처한 대학교육 극복 위해
전공 유연화·지역 사회 동참 등
마이크로 전공 유력하게 부상
부산외대 ‘동유럽’ 과정 첫 개설
물류·문화 협력 가능성 등 모색
지역 사회 국제경쟁력에도 도움
부산외대도 올 1학기에 ‘부산-동유럽 물류 및 문화 전공’이라는 새로운 마이크로 전공 과정을 개설하였다. 교과목 개발과 수업 진행도 대학 내부에 맡기지 않고, 해당 분야의 외부 전문기관에 주었다. 2학년 이상 학생이면 제1 전공이 무엇이든지 누구나 등록할 수 있었는데, 올해 첫 모집에는 국제마케팅, 튀르키예 중앙아시아전공, 외교 국제개발, 사회체육, 상담심리, 스페인어, 경영학과 등에서 19명의 학생이 모였다. 수업은 강의식이 아니라 대부분 프로젝트 수행식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우크라이나 정부 자료와 부산·경남의 기업 능력 등을 분석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 흑해의 오데사항 재건사업 등에 부산 기업이 어떻게 참여하면 좋을지 등을 고민하였다. 그리고 전쟁으로 달라진 동유럽의 새로운 정세와 여러 현안을 조사하고 토론하며 지역 사정을 심도 있게 공부하였다. 동유럽 마이크로 전공은 현장 수업을 필수로 한다. 한 학기 동안 프로젝트 수업을 통하여 체득한 지식은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반드시 동유럽 현지에서 확인하고 보완하도록 교육과정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올해 1학기 동유럽 마이크로 전공 과정에서 8명을 선발, 이번 여름 방학 때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10일간 다녀왔다. 마이크로 과정 개설 이후 첫 ‘동유럽 원정’이어서 오데사 등 우크라이나 본토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거기가 아직 전쟁 중이라서 우크라이나 영내로 직접 들어가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벨라루스, 러시아 등 6개국 가운데 면밀한 조사를 거쳐 바르샤바 SWPS(사회심리 및 인문학)대학을 협력 대학으로 선택하였다. 우선, 폴란드에 우크라이나 난민이 가장 많이 들어와 있고, 폴란드 정부가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에 동유럽에서 가장 적극적인 데다, 사전 소통 과정에서 SWPS대학 아시아학부 교수와 학생들이 우리의 의도에 가장 적극적으로 임했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은 ‘동유럽 현지 체험 및 해외 봉사’라는 마이크로 전공과목의 성격과 목적에 맞게 오전에는 SWPS대학 312호 강의실에서 폴란드 학생들에게 한국 청년들의 언어와 문화를 놀이와 퀴즈, 각종 체험 등의 방식으로 가르치고, 오후에는 폴란드 학생들과 1 대 1로 짝을 이루어 팀 과제를 수행하러 나갔다. 올해의 조사 과제는 ‘폴란드와 한국의 전통의상 착용 문화 비교’ ‘동유럽과 한국 청년들의 SNS 선호도 차이’ ‘한국 전통주의 동유럽 마케팅 가능성’ ‘폴란드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과 스포츠 스타’ 등 네 개인데, 이들 또한 한국에서의 1학기 교실 수업 중에 학생들 스스로 투표를 거쳐 뽑은 과제였다. 학생들은 이외에 현지에서 우크라이나 난민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달라져 가는 대(對) 우크라이나 인식 변화 등을 조사하고, 결과물을 학교의 융합교육센터에 보고서와 영상물로 보고하였다. 이 자료들은 다음 학기의 동유럽 마이크로 전공 수강생들에게 참고자료로 환원된다.
SWPS대학 도미니크 교수의 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동유럽에 관심이 쏠리면서 최근 폴란드 지방 도시에 공장이나 회사를 세우는 한국 기업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국내외에서 프로젝트 수업, 교육 봉사, 현장체험 등을 통해서 길러진 청년들의 동유럽 대처 능력은 앞으로 부산 기업의 동유럽 진출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의 시대를 가리켜 지-산-학 협력 시대라고 한다. 지방 대학을 살리고 교육혁신도 이루며 지역 사회의 국제경쟁력도 보강하는 ‘꿩 먹고 알 먹기’ 식 시도에 지자체, 기업, 대학의 관심이 지금보다 더 모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