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누구인가 화재경보기 소리를 듣고 스프링클러를 껀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스프링클러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화재가 이처럼 커지지 않았고 아파트 단전 단수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인천소방본부는 인천 아파트 방재실에서 화재 수신기를 확보해 디지털포렌식을 한 결과 솔레노이드 밸브가 작동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불이 난 직후인 8월 1일 오전 6시 9분께 수신기로 화재 신호가 전달됐으나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야간 근무자가 정지 버튼을 방재실에서 누른 기록이 나온 것이다. 화재 신호가 수신됐는데도 정지 버튼을 누르면 솔레노이드 밸브가 열리지 않아 스프링클러에서 소화수가 나오지 않는다.
이후 5분 만인 오전 6시 14분께 밸브 정지 버튼은 해제됐지만, 그 사이 불이 난 구역의 중계기 선로가 고장 났고 결국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것은 근무자가 화재 신호가 나왔는데도 뭔가 잘못된 신호이거나 오작동일 수도 있다고 보고 정지 버튼을 누른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외부 전문가들 역시 지하 2층에 있는 수조에 소화수가 90% 이상 그대로 있는데다 소화 펌프가 정상 작동했을 때 주변으로 튀는 물 자국이 없는 점을 토대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실제로 아파트나 큰 빌딩의 경우, 기계 오작동으로 화재 경보음이 울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관리자들이 스프링클러와 경보기부터 먼저 끄는 사례가 있다.
지난 2019년 9명이 사망한 인천 남동공단 세일전자 화재 당시 화재경보기와 연결된 복합수신기를 경비원이 고의로 꺼 피해가 컸다.
소방 당국자는 “전기차 화재 직후 경보기는 울렸다”며 “경보음이 나자 관리사무소 야간 근무자가 밸브를 잠그는 버튼을 방재실에서 누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프링클러는 전기차 화재 발생 시 불을 완전히 끄는 역할을 하진 못해도 불길이 확산되거나 주변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막는다.
현장 감식에 참여한 국립소방연구원 관계자는 “스프링클러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벤츠 전기차와 주변에 주차된 다른 차량 몇 대만 타고 진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화재는 주민 등 23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차량 87대가 불에 타고 783대가 그을렸다. 또 지하 설비와 배관 등이 녹아 정전과 단수가 이어졌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