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해운대 온천 시추 사진 공개 [핫하다, 부산 온천]

입력 : 2024-09-30 19:06:39 수정 : 2024-09-30 19: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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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주영택 원장
조선총독부 고서 입수해 번역·분석
100년 전 해운대 온천 관광 본격화
“온천도시 부산, 역사 연구도 필요”

1900년대 청송백사를 이룬 해운대 해수욕장과 온천마을. 현재 웨스틴 조선호텔 자리에는 소나무가 자라 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1900년대 청송백사를 이룬 해운대 해수욕장과 온천마을. 현재 웨스틴 조선호텔 자리에는 소나무가 자라 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부산 해운대온천의 첫 출발 시기인 1920~30년대 당시를 헤아려볼 수 있는 사연과 사진이 새로 공개됐다. 해운대 온천은 예로부터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의 ‘목욕 성지’(부산일보 6월 28일 자 3면 등 보도)였는데, 그 역사가 시작되던 100년 전 이야기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30일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에 따르면 해운대 온천이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건 100여 년 전이다. 조선총독부지질조사소가 1925년 발간한 ‘해운대온천조사보문’에 담긴 내용인데, 향토사학자인 주영택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이 <부산일보>를 통해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주 원장은 일본어로 된 해당 자료를 번역·고증한 결과, 해운대 온천 관광은 1920~1930년대 본격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 원장은 “해운대 온천이 주목받는 요즈음, 그 역사를 조명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해 오랜 기간 모은 자료를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1923년 해운대온천 제1호 시추정 굴착 장면.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주영택 원장이 옛 해운대 구보에 실린 사진을 입수해 2010년 저서에 소개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1923년 해운대온천 제1호 시추정 굴착 장면.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주영택 원장이 옛 해운대 구보에 실린 사진을 입수해 2010년 저서에 소개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1923년 해운대온천 제2호 시추정 굴착 장면.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주영택 원장이 조선총독부지질조사소가 발간한 ‘해운대온천조사보문’을 통해 입수해 최초 공개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1923년 해운대온천 제2호 시추정 굴착 장면.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주영택 원장이 조선총독부지질조사소가 발간한 ‘해운대온천조사보문’을 통해 입수해 최초 공개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주 원장은 1923년 당시 해운대 온천을 시추하던 사진도 공개했다. 주 원장은 “당시 서울 부호였던 아라이 하츠다로는 온천 발견권을 공식 획득해 사원 3명과 함께 공동 투자한 자본금 15만 원으로 ‘해운대온천기업합자회사’를 설립했다”며 “그는 온천지구의 가옥, 건축, 토지, 온천 관리를 하는 한편 온천호텔, 온천풀장, 해운각, 해운대 공중욕장, 순환버스, 농장을 운영하며 관광객 유치에 총력전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1923년 문을 연 해운대 자동차부 택시 영업소. 택시 15대를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1923년 문을 연 해운대 자동차부 택시 영업소. 택시 15대를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해운대 온천 투어가 인기를 끌자 19인승 대형 자동차도 운영됐다고 한다. 해운대온천기업합자회사는 1923년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부산진~해운대 간 19인승 대형 자동차를 투입, 온천 관광객을 실어날랐다. 1927년엔 온천객들이 기장 바다를 구경하고 갈 수 있도록 해운대~기장 노선도 1일 2회 운행했다. 뒤이어 1928년에는 해운대~동래 노선도 1일 4회씩 운행했다. 관광객들이 해운대 온천을 누비는 이른바 ‘온천 투어’가 당시에도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해운대온천기업합자회사가 1936년 제작한 해운대 온천 안내 책자.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해운대온천기업합자회사가 1936년 제작한 해운대 온천 안내 책자.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이후 해운대에는 더 많은 온천 시설이 들어섰다. 1935년엔 객실 23개짜리 서양식 근대호텔 ‘온천호텔’도 생겼다. 해운대 온천장 거리에 공사비 7500원을 들여 돔 지붕으로 지어진 서양식 근대호텔이었다. 호텔은 ‘청기와 온천’, ‘국제탕’, ‘해운대온천’ 등 당시 온천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호텔인 1980년 도로 신설로 사라졌다.


1935년 개장한 해운대 온천 풀장. 현재 해운대구청 자리에 위치한 온천 풀장은 수영장, 온천탕, 연회장, 동물원, 탁구장, 정원 등 위락시설을 갖추었다. 온천 풀장 1일 수용 가능 인원은 2000명이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1935년 개장한 해운대 온천 풀장. 현재 해운대구청 자리에 위치한 온천 풀장은 수영장, 온천탕, 연회장, 동물원, 탁구장, 정원 등 위락시설을 갖추었다. 온천 풀장 1일 수용 가능 인원은 2000명이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현 해운대구청 자리에 운영된 온천 풀장 사진도 공개됐다. 1935년 위락시설을 갖춘 해운대온천풀장이 문을 열었다는 게 주 원장 설명이다. 수영장, 온천탕, 연회장, 탁구장, 동물원, 정원 등을 갖춘 휴양 온천 공원이었다. ‘해운대공중욕장’ 역시 1935년 개장했다. 지금의 ‘해운대온천센터’ 자리다. 당시 최신식 욕장 시설을 갖춘 2층 건물로 남·여탕으로 구분돼 있으며, 욕조는 타원형이었던 것으로 기록돼있다.


1935년 개장한 해운대공중욕장.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1935년 개장한 해운대공중욕장.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제공

이처럼 해운대는 온천 관광 산업이 번성했던 곳이지만 현재는 그 흔적이 간데없이 사라졌으며, 이에 대한 기록도 미비하다는 지적이 인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주영택 원장은 “해운대 온천 관광의 100년 역사를 지자체가 나서 조명해야 한다”며 “현 해운대구청이 위치한 온천 풀장 부지에 전시관을 조성하는 등 해운대 온천의 역사를 기록하고 더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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