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 이슈로 부산 금정구가 시끌벅적하다. 초반에는 조금 잠잠하다 싶었는데,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후보 단일화를 결정하면서 지난주는 내내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11~12일 주말 사이 끝난 사전투표 참여율은 20.63%로 높게 기록됐다. 전국의 다른 3곳의 선거구에 비하면 저조한 감이 없지 않지만, 금정의 높은 사전투표율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오는 16일 본투표까지 얼마나 열기를 더해갈지 관심을 모은다.
특히 이번 보궐선거 기간 동안 이재명, 한동훈 두 여야 대표는 경쟁하듯 부산 금정구를 찾아 김경지, 윤일현 구청장 후보에 대한 지지 유세를 이어가고 있다. 양당은 각각 정권 심판에 힘을 실어달라고, 다시 한번 보수에 기회를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여야가 공통적으로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침례병원 공공병원화’ 공약은 어쩐지 마음이 쓰인다. 또다시 무위에 그치는 허무한 약속은 아닐지 못내 의구심이 드는 탓이다.
침례병원은 서부산에서 살았던 기자의 기억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동구 초량동에 병원이 있었을 때는 맹장이 터져 응급수술을 받았던 고교 동창을 위로하러 가기도 했고, 중앙대로 변에 위치해 있어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늘 익숙하게 보아오기도 했다. 1999년 금정구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한 이후에는 어쩐지 가장 좋은 시설과 훌륭한 인력으로 가동되는 것 같아 ‘이 동네에 이렇게 큰 병원이 생겨서 여기 사람들은 참 좋겠구나’라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튼튼해 보이던 병원은 2017년 초부터 휴업을 연장하다가, 결국 그해 7월 파산했다. 병원의 휴업 사실을 우연히 접하고 첫 보도를 한 기억도 생생하다. 그해 내내 법원의 파산 선고, 정상화를 위한 토론회, 금정구민들의 서명운동, 정부가 나서줄 것을 촉구하는 청와대 앞 집회 등등 침례병원을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을 주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영 병원 또는 국립치매센터로 탈바꿈해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병원으로 정상화를 이루게 해달라는 지역민의 바람을 지난 정부가 끝내 별다른 응답 없이 외면한 것도 안타깝게 지켜봤다.
침례병원 정상화 문제는 이후 수년 간 진척이 없었다. 잊혀진 듯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다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형준 당시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며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그가 당선된 후에는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부산의 15대 정책과제에 포함시켰고, 뒤이어 2022년에는 499억 원을 들여 병원 부지를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국감에서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침례병원의 보험자병원 설립안을 연내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상정하겠다”고 발언했다. 드디어 병원 정상화에 ‘청신호’가 켜졌다며 부푼 기대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침례병원의 보험자병원 설립안은 지난해 12월 건정심에 상정됐지만, 심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현재 소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이번에 건정심에서 이 안건이 통과(의결)되면 부산 침례병원은 비수도권 최초의 보험자병원 설립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
부산에 공공병원 하나 생기는 걸 두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수십년 째 평균 기대수명 최하위, 노인인구 비율 최고치를 보이고 있는 부산은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해 건강 이슈가 결코 가볍게 체감되지 않는다. 건강은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공적 책임이 필요한 사안이다.부산시도 이를 인지하고 부산의료원에 이어 2028년 서부산의료원 개원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침례병원까지 보험자병원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문을 연다면, 의료 안전성과 전문성이 확보될 뿐만 아니라 부산 전체의 의료 여건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더욱이 열악한 지방 재정을 투입하지 않고 국가 재정으로 운영돼 부산으로서는 엄청난 의료 자산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더더욱 이번 보궐선거에서 정치권이 공언한 침례병원 정상화 공약이 더 큰 무게감을 갖는다. 이들의 약속이 그저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주겠다고 말하면 선거에서 표를 더 받을 수 있다는 낡은 인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길 바란다. 금정구민은 여전히 이 공약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약속에 대한 기대만큼 약속이 또다시 뒷전으로 밀려날 때 일어날 매서운 후폭풍도 감당해야 한다.
출근길에 침례병원 입구를 둘러보고 왔다. 진입로를 가로막고 있는 철제 펜스가 이번에는 걷힐 수 있을까. 7년 전 퇴직금과 체불 임금을 끝내 정산 받지 못하고 일터를 떠나야 했던 병원 종사자들, 병원 정상화에 목청을 높였던 당시 금정구의회 의원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와 시민단체 관계자들, 부산대병원 교수님들까지 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쳤다. 지금 그들은 정치권의 침례병원 정상화 공약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