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안나푸르나/이도정, 강재규, 조동희 외 3인
산은 왜 오르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있다. 어린 시절 ‘소풍’을 빌미로 등산을 해야했던 슬픈 기억이 떠올라서다. 한참 동안 거친 오르막길을 올라 겨우 정상에 닿으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내려가곤했다. ‘어차피 내려올 거 왜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산길이 원망스러웠다. 그 시절 내게 등산이란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사치품 같았다.
책 <가자, 안나푸르나>에는 평범한 산이 아니라 히말라야의 거친 산길을 헤치는 이들이 등장한다. 고교 시절부터 예순 중반의 나이까지 우정을 함께한 이들은 9박 11일간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여정을 떠난다. 적지 않는 나이에도 그들의 발길은 여전히 가볍다.
심리학자, 환경법학자, 한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은 제각각 산이 주는 재미를 찾아낸다. 안나푸르나에 대한 6인 6색의 이야기가 다채롭다. 이국땅에 도착한 이들은 그들의 문화와 식사방식 등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 침을 놔주는 등의 친절도 베푼다.
책에서는 나마스테(Namaste)와 비스따리(Bistary)의 미덕을 강조한다. 평범한 인사처럼 보이는 나마스테는 사실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경배합니다’라는 의미를 지녔단다.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건네는 인사말은 상대방과 그의 세계에 대한 존중을 드러낸다. ‘천천히’라는 의미의 네팔어인 비스따리는 보행속도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네팔의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여유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면 빠르게 지나가는 동안에는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고 보니 나의 어린 시절의 등산에는 ‘비스따리’가 없었음을 알게 됐다. 이제는 산이 주는 즐거움을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이도정, 강재규, 조동희 지음/세종출판사/231쪽/1만 3000원.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