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지방 소멸 위기가 한국보다 먼저 닥친 국가다. 여러 지역이 로컬 특색을 살리며 도시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일본 지방 도시들의 생존 해법을 소개한다.
산과 바다를 낀 일본 니가타현은 자연이 살아있는 곳이다. 넓은 평야에서 최고급 쌀로 유명한 ‘고시히카리’가 나고, 소설 <설국> 배경이 될 만큼 많은 눈이 내린다. 인구 211만여 명인 니가타현은 자연과 전통을 지역 산업에 십분 활용한다. 자연에 그대로 스며들거나 전통 방식을 접목할 때도 있다. 로컬 자원을 기반으로 삼은 지역 산업은 일본을 넘어 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다.
■ 캠핑 성지가 된 ‘스노우피크’ 본사
초록 대지가 본사 앞마당이었다. 이달 1일 니가타현 산조시 스노우피크 본사에 도착하자 눈앞에 5만㎡ 규모 캠핑 필드가 펼쳐졌다. 스노우피크 홍보부 직원 미카미 코타로 씨는 “본사 부지가 약 15만 평인데 10%가 캠핑장”이라며 “2022년 캠핑장을 열었는데 연 5~7만 명이 방문한다”고 했다. 텐트 260개를 칠 수 있는 이곳은 장비만 있으면 1인당 1600엔에 이용할 수 있는데, 4~11월 주말이면 예약이 가득 찬다.
세계적인 캠핑용품 회사인 스노우피크는 2011년 산조 시내에 있던 본사를 옮겼다. 차량으로 30분 거리인 도심 외곽에 사무동을 지었고, 옛 목장과 골프장 부지를 사들여 대규모 캠핑장뿐 아니라 식당, 온천과 숙박 시설 등을 열었다.
자연을 흠뻑 느낄 캠핑장까지 개장한 건 단순히 용품만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기 위해서다. 스노우피크는 홋카이도, 규슈 등에 직영 캠핑장을 12개까지 늘렸다. 홍보부 무라타 하루오 매니저는 “고객들이 캠핑용품을 활용할 공간까지 제공하는 것”이라며 “직원들이 본사 창문으로 캠핑용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관찰하기도 한다”고 했다.
본사 이전은 지역에 선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니가타뿐 아니라 국내외 직원들이 활기를 불어넣고, 야영객이 몰려 지역 특산물 소비도 많아진다. 독일에서 온 직원 토니 슈레가(26) 씨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해 자연과 연관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곳이 적합했다”고 했다. 도쿄 출신으로 4년간 일한 카와베 무토키 씨는 “도쿄는 뭐든 과하게 많다”며 “여기는 석양을 편히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
스노우피크는 1958년 산조시에서 문을 열었고, 2021년 기준 일본 내 매출만 250억 엔인 회사다. 젊은 세대가 많은 본사 사무동 직원 40~50명을 포함해 일본 전역에서 1200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 눈과 쌀이 만난 ‘핫카이산 사케’
겨울에 쌓아둔 눈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달 2일 니가타현 미나미우오누마시 사케 보관소인 ‘유키무로’는 냉기가 가득했다. 천연 눈을 쌓아둬 4도 이하로 유지되는 이 창고에 ‘준마이 다이긴조’가 담긴 2만L 탱크 20개 등에서 사케가 숙성되고 있었다. 겨울에 1000t까지 쌓아둔 눈은 절반 이상 남은 상태였다.
사케 업체인 핫카이산 주조가 만든 ‘우오누마 마을’에선 유키무로를 활용한 전통 방식으로 술을 만들고 있다. 핫카이산 주조 야노 요코 기획실장은 “겨울이면 눈이 하루 80cm 정도 내리고, 3m 넘게 쌓일 때도 있다”며 “품질이 좋은 니가타 쌀과 좋은 물로 만든 술을 눈을 쌓아둔 창고 안에서 숙성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거추장스러운 눈을 전통 방식으로 잘 활용하는 것”이라며 “여름철 차가운 공기를 옆쪽 공간으로 보내 에어컨처럼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우오누마 마을은 작은 테마파크처럼 꾸며 국내외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맥주 주조장과 기념품 가게뿐 아니라 주먹밥 판매장, 메밀 요리 식당, 빵집 등에서 각종 지역 특산물을 활용하고 있다. 그 결과 연간 방문객은 소비자 기준 30만 명, 실제로는 50만 명 정도로 집계된다. 야노 요코 기획실장은 “전통을 지닌 양조장 견학 등을 통해 향수를 느끼게 하고, 사계절 모두 다양한 지역 특산물을 느끼고 맛볼 수 있게 다양한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니가타(일본)/글·사진=이우영 기자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2024년 ‘KPF 디플로마-로컬저널리즘’ 교육 과정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