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단독주택에 살다가 부모님을 따라 동래구에 있는 높은 건물로 이사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름, ‘아파트’였다. 그때만 해도 부산에는 아파트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국민학교 반 친구들은 대부분 단독주택에 살았다. 공동주택이라면 기껏해야 다세대 연립주택 정도였다. 골목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 다 알았다. 산이 많은 부산이라 평평하고 너른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답답하지도 않았다. 사방을 둘러보면 나즈막한 집들 너머로 푸른 산, 하늘이 보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아파트는 단독주택을 점점 밀어냈다. 아니 정확히는 지워버렸다. 아파트는 그렇게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과 재산 증식의 꿈이자 애증의 보금자리가 됐다. 제조업 호황에 취해 산업 혁신 노력을 게을리하는 사이에 빈 땅, 주택이 밀집한 지역,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40년이 지난 2024년, 부산은 아파트만 가득한 도시가 되어 버렸다. 길을 걸어도, 차를 타고 보아도 높은 아파트들이 산과 하늘을 가린다.
2006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서는 주거지 중 아파트가 서울 36.8%, 부산 43.9%였다. 2014년에 서울 42.6%, 부산 51.5%로 부산의 경우 절반을 넘어섰다. 2022년에 서울 43.5%, 부산 57.3%로 서울에 비해 부산의 아파트 점유율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아파트는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인 양극화 현상도 극명하게 드러낸다. 2022년 대한민국 광역시의 아파트에 사는 저소득층이 40.69%에 그친 반면 중소득층 69.96%, 고소득층은 83.87%에 달했다.
지난 18일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라며 중독성 강한 가사를 반복하는 노래 ‘아파트(APT.)’가 세상에 나왔다. 제2의 ‘강남스타일’이라며 세계적인 신드롬이 일고 있다. 블랙핑크 멤버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협업한 이 한국적인 노래는 지난 29일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8위, 각국 음원 차트를 휩쓰는 등 K팝 여성 가수로서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노래 ‘아파트’를 접한 외국인들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도대체 아파트가 뭐냐”고 궁금해했다. 아파트는 영어 Apartment를 한국식으로 부른 일종의 콩글리시다. 미국에서 아파트는 대체로 건물 소유주에게 월세를 내는 임대아파트를 뜻한다. 개별 소유자가 가진 아파트형 혹은 빌라형 주거 공간은 콘도라 부른다. 우리나라처럼 전세와 월세, 자가가 뒤섞인 드높은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선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층 닭장과 같은 구조물 속에 대다수 인구가 사는 나라 역시 몇 되질 않는다.
25층 높이 아파트인 집으로 미국인 친구들을 몇 번 초대한 적이 있다. 이들은 미국과 달리 생활편의 시설 등이 가까이 밀집한 ‘콤팩트 시티’ 부산을 놀라워했다. 마당도 없이 높이 쌓아 올린 아파트 속 아래위층 사이에서 살아가는 모습에 복잡미묘한 경이로움을 표현했다. 학교나 수용소처럼 관리사무소의 안내 방송이 집 안에 쩌렁쩌렁 울릴 때 더욱 그랬다. 바닷가 드높은 건물들이 오피스 빌딩이 아니라 대부분 아파트라는 사실에도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노래 ‘아파트’의 소재는 손을 쌓아 올리면서 특정 숫자에 걸린 이가 술을 마시거나 벌칙을 수행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즐거운 놀이다. 청년들이 대학 엠티 등 술자리에서 즐기는 게임이라는 점 역시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만 보고 자랐으니 당연히 놀이의 소재가 된 것이다.
요즘 K문화의 확산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부쩍 늘고 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외국인 입국자는 1260만 963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7.5%나 증가했다. 지난 9월 부산의 등록 외국인도 5만 3353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11.8%가 늘었다. 이들이 한국인의 애환이 서린 아파트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
과거 부산시 등 지자체가 처음에 세웠던 숱한 도시계획, 지구단위계획에는 분명 이상적인 공간 배치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상업 지역, 사무 공간이 결국 아파트로 채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시간을 20~30년 전으로 되돌려 부산 바닷가 아파트 중 3분의 1이라도 글로벌 기업의 한국 캠퍼스 등 일자리가 많은 오피스 건물로 채워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랬다면 청년들이 지금처럼 번듯한 일자리가 없어 정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축소 도시’를 고민하는 부산에 지금이라도 미래를 내다보는 도시 비전을 만들고 실천해야 우리 아들딸들이 터를 잡고 살 수 있다. 저출생과 인구 감소, 초고령 도시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아서는 안 된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