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도시철도 1호선이 지나는 하단오거리 일대는 하단오일상설시장을 비롯해 병원, 상점이 몰려 있어 서부산권 대표 중심지 중 하나다. 앞으로 하단역은 도시철도 하단녹산선과 5호선(사상하단선), 부산형 급행철도가 잇따라 개통하며 ‘쿼드러플 역세권’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이런 변화에도 하단오거리 일대는 통일성 없이 제각기 설치된 교통 표지판과 도로 중앙 펜스, 좁은 횡단보도 등으로 혼란스럽다. 하단오거리에 ‘사람’을 생각하는 공공디자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단오거리, ‘비움’부터 시작
지난 7일 오전 10시. 부산의 디자인 전문가들과 하단오거리 일대를 찾았다. 쇼핑몰 아트몰링 입구 주변 인도 곳곳에 파란색 지주식 볼라드(차량 진입 억제용 말뚝)들이 눈에 띄었다. 상당수가 파손돼 차량의 인도 진입을 막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하단역 3번 출구 바로 앞에는 녹슨 자전거가 20대 가까이 방치돼 있었다.
횡단보도 폭도 너무 좁았다. 길 건너편 보행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자 횡단보도가 아닌 차도 위를 걷거나 뛰는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차량 정지선과 횡단보도가 너무 가까워, 차량들이 행인에게 경적을 울리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이날 현장을 찾은 부산디자인진흥원 강필현 원장은 하단오거리에는 ‘비워내기’가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안전과 편익을 고려한 디자인, 랜드마크 시설물도 좋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환경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하단역 3번 출구 안내 기둥 옆에는 3개의 철기둥이 추가로 설치돼있다. 각각 교통표지판 2개에 가로등 1개다. 강 원장은 “독일, 일본처럼 각각 다른 용도로 세워진 지주형 도로 시설물을 하나의 기둥에 모아서 설치하는 표준형 디자인을 마련해 도입한다면 비용은 아끼고, 시민 편의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단 새 모습, 변화 시금석될 것”
하단오거리 일대에 공공디자인을 채워넣는 일은 부산 전체에도 중요하다. 혼란스러운 공간이 새 모습으로 바뀌면 공공디자인 개념을 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에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부산디자인진흥원 김유준 과장은 “하단은 ‘을숙도 개발 사업’과 함께 서부산 교통의 핵심지로 부상해 상징적인 의미가 큰 곳”이라며 “각종 공공디자인과 첨단 기술을 시연해 보는 테스트 베드로서도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부산시 역시 최근 미래디자인본부를 신설하는 등 공공디자인 강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핵심 중 하나로 도시비우기추진협의체를 구성해 도시 비우기 사업에 연내 착수할 예정이다. 주민 참여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강 원장은 “결국 공공디자인의 목표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조화롭게 증진하는 것”이라며 “하드웨어에 앞서 소프트웨어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아이디어와 참여도를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