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유엔(UN) 제5사무국을 유치하기 위한 범시민 추진위원회가 11일 발족했다. 유엔 사무국은 유엔 운영과 사무를 총괄한다. 본부는 미국 뉴욕에 있는데, 본부 하나만으로는 각지에서 벌어지는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세계 주요 도시에 별도의 사무국을 두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 오스트리아 빈, 케냐 나이로비에 각각 사무국을 두고 유엔 기능을 분담하는 식이다. 그동안 세계 최다 인구의 아시아에는 사무국이 없어 설치 요구가 높았는데, 이왕이면 부산에 유치하자는 시민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세계 평화가 유엔의 설립 취지이고 보면, 제5사무국이 부산에 유치될 경우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군사적 긴장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잠재적인 파괴력 측면에서 한반도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반도 긴장 해소를 통한 평화의 초석을 놓는다는 점에서 제5사무국은 대한민국에 설치돼야 함이 마땅하다. 대한민국 안에서도 최적지를 찾자면, 당연히 부산이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이 처음 들어온 지역이자, 이를 기념하는 유엔기념공원이 있는 곳이어서다. 매년 11월 11일이면 부산을 향해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묵념하는 ‘턴 투워드 부산’ 행사도 열린다. 그래서 부산은 ‘유엔이 만든 평화의 성지’로 불린다. 이런 곳을 두고 달리 유엔 사무국을 논할 수는 없을 터이다.
문제는 넘어야 할 고비가 첩첩이라는 사실이다. 기실 제5사무국 유치 논의는 어제오늘 있었던 게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숱한 지자체들이 저마다 당위성을 주장하며 특정 종교세력이나 통일단체 등과 연대해 유치 활동을 벌여 왔다. 여기엔 경기도 의정부시, 충북 괴산군, 경기도 고양시 등 기초지자체는 물론 전북도와 경기도 같은 광역지자체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경기도는 DMZ(비무장지대)에 제5사무국을 유치하겠다며 최근까지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포기했거나 답보 상태다. 유엔 사무국 유치를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가 필수인데, 정부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엔 사무국 유치는 일선 지자체로선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 내야 가능하다. 중국이나 일본 등과도 경쟁해야 한다. 특히 북한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현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서는 난감한 일이다. 정부를 설득하고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정밀한 준비와 대책이 전제돼야 유치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유치하려는 사무국의 정체성과 의제 등 유엔을 설득할 명분도 갖춰야 한다. 그럼에도 유엔 사무국 유치는 그 의미를 고려할 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글로벌 허브도시로 성장하려는 부산의 전략에 부합해서다. 갓 결집한 시민사회의 분투와 정부·부산시의 관심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