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달에 걸쳐 국내 은행들의 당기순이익이 ‘역대급’을 기록했다. 거칠게 요약하면, 예금 금리는 내려가는데도 대출 금리는 되레 올라간 결과다. 예대 금리차(예금과 대출금리 차이)는 은행 수익성과 직결된다. 이 격차가 올해 하반기 들어 더욱 벌어지자 은행들이 가만히 앉아 배만 불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 배경에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이 도사리고 있다. 결국 모든 피해는 이자 부담이 커진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태가 심각하다.
■ 은행권 역대급 ‘이자 장사’
올해 하반기 들어 은행들은 시장 금리 인하를 반영해 예금 금리를 발 빠르게 내렸다. 지방은행이 먼저 시작했고 눈치 보던 시중은행이 나중에 가세했다. 그렇다면 대출 금리도 함께 인하하는 게 당연한데 웬걸 대출 금리는 오히려 인상하는 추세다. 정부가 가계대출 억제를 유도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예대 금리차는 지난 8월에 이어 두 달 연속으로 크게 벌어졌다. 덩달아 은행 수익도 크게 늘었다. 5대 금융지주사의 올해 3분기 누적 순이익은 16조 원 규모로, 2022년에 기록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3분기 누적 이자 이익 총액으로 따지면 37조 원을 훌쩍 넘기는 수준이다. 금리 조정에 따른 막대한 수익 논란에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눈총을 받는 이유다.
물론 대출 규제를 종용하는 정부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은행권의 고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측면을 감안한다 해도, ‘팩트’는 변하지 않는다. 막대한 이윤을 가져가는 것은 은행이요, 그만큼 이자 부담을 더 떠안는 것은 소비자라는 사실.
■ 이자 수익이 90%라니
어찌 보면 은행업이란 게 원래 그렇다. 돈으로 영업을 하는 일이라 ‘이자 장사’로 수익을 취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그런데 왜 대중들의 시선은 곱지 않을까. 예금 금리는 시중 상황에 맞게 재빠르게 내리면서도 대출 금리는 정부 눈치를 보며 제대로 조정하지 않는 얄미운 행보 때문이다.
국내 은행권의 이자 이익 쏠림이 어느 정도인지는 외국 사례와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국내 4대 은행의 전체 영업이익에서 이자 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90%에 달한다. 이자 이익 외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미국 4대 금융그룹(JP모건체이스·뱅크오브아메리카·씨티·웰스파고)의 이자 이익 의존도는 50%대에 머문다. 나머지는 투자를 통해 돈을 벌고 있다.
은행은 수익을 지향하지만 일반 사기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신뢰’와 ‘공공성’이 존립 근거인 만큼 사회적 책임 또한 요구된다는 뜻이다. 고금리 수익에만 목을 매는 방식은 지양하고 이자 이익 외의 영업 확대를 꾀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금리로 확보한 이자 수익의 규모가 크면 그 일부의 사회 환원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 오락가락 정부 정책도 한몫
은행 이자 수익의 확대는 이자율의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출 총량의 급증에 따른 것이다. 지난 10월 기준으로 1년 새 늘어난 4대 은행의 대출 규모는 100조 원에 육박한다. 우리 사회의 빚이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대출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게 된 사회 구조적 문제를 상징하는 현상이다. 집값만 보더라도 소득으로 해결하기 힘들 정도로 치솟아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의존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자영업자도, 기업체도 다르지 않다. 빚의 악순환에 대출만 계속 쌓이는 형국이다.
이렇게 빚지는 사회를 만들어놓은 정부는 대출을 풀었다 조였다 하는 단순 정책만 반복하고 있다. 그마저도 지난 1년간 잇단 실기(失期)로 점철됐다. 2023년 10월 윤석열 대통령의 지적에 따라 금융 당국은 대출 이자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은행에 주문했더랬다. 은행이 마지못해 대출 금리를 내렸으나 정책 의도와 달리 부동산 시장이 출렁거렸다. 대출 규모가 급증하면서 부동산 거래가 늘어나고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의 금리 부담을 덜어주려던 취지가 현실에서는 엉뚱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둘러싼 논란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DSR은 대출자의 전체 금융 부채 원리금 부담을 소득 수준과 비교한 지표다. 금융 당국은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DSR을 강화하는 2단계 시책을 지난 7월에 시행하려다 2개월을 미뤘다. 그 사이에, 돈을 더 빌려놓자는 대출 심리가 자극받았고 실제로 대출 급증과 아파트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금융감독원이 정반대 카드를 꺼낸 것이다. 지난달부터 은행권에 대출 축소, 심사 강화 같은 강력한 규제를 요구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은행권의 역대급 이자 수익이다.
■ 서민들 고충 언제까지
정부가 가계부채 억제와 부동산 시장 활성화라는 상반된 정책을 동시에 펼친 탓이 크다. 창과 방패를 함께 쓰는 격인데, 당연하게도 시장은 혼란을 피할 길이 없다.
문제는 내년에도 이런 현상이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정부가 서민 주거비 부담 경감 명목으로 내년에 55조 원 규모의 부동산 정책 상품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게 얼마 전이다. 그렇게 되면 올해도 동일한 현상이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가계대출 급증-부동산 시장 불안-은행권 이자 폭리로 이어지는 현실이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지금 정부가 모순된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이를 섬세하게 관리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부동산 부양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정책 수정을 하지 않으면 가계부채, 은행권 이자 장사 등의 문제는 해소되기 힘들다. 무엇보다 서민들의 피해와 고통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지 그게 걱정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