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비에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겨울철 대표 주전부리인 ‘곶감’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14일 경남 지역 곶감 주 생산지인 산청군·함양군 등에 따르면 이달 초부터 곶감 말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곶감 덕장마다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지리산 자락에서 생산되는 산청·함양 곶감은 품질이 우수해 전국 각지로 팔려나간다. 곶감 농가들은 겨울 내내 곶감 생산에 매달려 설 명절 전에 대다수 물량을 판매한다.
1년 농사의 결실을 보는 시기지만 농민들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겨울 초입임에도 한낮 기온이 20도를 웃돌고 비가 자주 내리는 등 ‘겨름(겨울+여름)’ 날씨가 이어지면서 곶감 생산에 가장 치명적인 ‘홍시화’와 ‘곰팡이’가 확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홍시가 되거나 조금이라도 곰팡이가 핀 곶감은 상품 가치를 잃는다. 특히 곰팡이는 다른 곶감으로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농민들로선 만사를 제쳐둔 채 덕장 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한 곶감 재배 농민은 “농가마다 조금씩 피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온다습하면 곰팡이가 많아지고 말린 감이 홍시가 돼 상품 가치를 잃는다. 우리 지역만의 일도 아니다. 쉬쉬하는 농가가 많아서 정확한 피해 규모를 알기는 어렵지만 농가마다 걱정이 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원래 농가들은 절기상 첫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을 전후해 감을 수확하고 곶감 만들기에 들어간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커지는 이 시기가 곶감 말리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원료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40일가량 말리는 반건시, 50~60일가량 말리면 건시가 된다.
이 시기 곶감은 무엇보다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날씨가 춥고 습도가 낮을수록 좋다. 그래야 곰팡이가 피지 않고 풍부한 영양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을 끼고 있는 산청·함양은 차가운 공기가 계곡을 타고 재배 농가에 퍼지고, 감들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찰진 감으로 변한다. 예년 같으면 지금 이맘때 최저기온 1~2도, 최고기온 15도 안팎으로 곶감 생산 적기였지만, 올해는 최고기온이 20도를 웃도는 데다 잦은 비까지 겹쳐 건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몇 년 전부터 지자체나 정부에서 곶감 농가를 상대로 건조기 보급 사업에 나서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소농이나 고령의 농민들은 이러한 장비를 도입하지도, 사용하지도 않아 기후 변화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농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감 깎는 시기를 늦추고 있다. 일단 원료감을 저온저장고에 보관한 뒤 날씨가 추워지면 곶감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다만 이럴 경우 출하 시기 조율에 어려움이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곶감 농가는 11월 초부터 생산에 들어가 설 명절 전에 대부분의 물량을 출하시킨다. 올해는 곶감 생산이 1~2주 늦어진 데다 설 명절도 1월 29일로 비교적 빨라 제때 출하가 가능할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호림 산청군의원은 “곶감을 일찍 생산하자니 곰팡이가 걱정이고 늦게 하자니 적기 출하가 걱정이다. 곶감 주산지 지자체들은 정확한 피해 규모 확인을 해야 한다. 또한 앞으로 기후변화가 계속 이어질 것을 감안해서 곶감 생산이 원활해질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