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아온 박종우 경남 거제시장이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지난 지방선거 당내 경선을 앞두고 당원 명부 제공 등을 대가로 지역구 국회의원실 관계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에 대해 1, 2심에 이어 대법원이 ‘징역형’을 확정하면서 ‘당선 무효’가 됐다. 우려했던 ‘시정 공백’ 사태가 현실화하면서 지역사회는 크게 술렁이고 있다. 설상가상 각종 현안 사업 추진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14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 시장에 대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유죄 부분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직선거법 위반죄의 성립, 진술의 신빙성 판단,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박 시장은 2021년 7~9월 국민의힘 거제 지역 당원 명부 확보와 SNS 홍보 활동 대가로 측근인 A 씨에게 3회(300만 원, 500만 원, 400만 원)에 걸쳐 총 1300만 원을 제공하고, A 씨가 서일준 국회의원실 관계자 B 씨에게 전달하도록 공모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거제시선거관리위원회 고발로 수사를 벌인 검찰은 박 시장의 범행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직접 돈을 주고받은 A 씨와 B 씨만 재판에 넘겼다. 박 시장에 대해선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부산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청구했고, 7개월여 만에 인용 결정이 나왔다. 재정신청은 검찰이 고소·고발 사건을 불기소하면 그 결정이 타당한지 고등법원에 다시 묻는 제도다. 법원이 인용하면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반드시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
뒤늦게 박 시장을 기소한 검찰은 “여러 증거에 비춰 피고인의 유죄 증거가 명확하지 않지만, 법원의 공소제기 명령에 따라 기소된 만큼 재판부가 면밀히 살펴본 후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해 달라”며 이례적으로 ‘적의 판단’을 요청했다. 적의 판단은 검찰이 구형하지 않고 법원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사실상 백지구형으로 재정신청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나온다.
이에 1심 재판부는 검찰 공소사실 중 최초 전달한 300만 원 기부 혐의만 유죄로 인정,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 판단도 같았다. 다만 1심에서 인정한 300만 원 중 200만 원에 대해서만 범죄 증명이 됐다며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일부 감형했다.
선출직 공무원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그 직을 상실한다. 이에 따라 내년 4월 2일 재선거가 치러진다. 이 기간 부시장이 시장 직무를 대행하지만, 수장 공백에 따른 혼란과 엇박자는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민선 8기 주요 현안 사업 역시 당분간 표류하게 됐다. 100년 거제 디자인 등 박 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프로젝트는 사실상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남부내륙철도, 한·아세안 국가정원, 거제~통영 고속도로, 기업혁신파크, 공항배후도시 등 대규모 국책 사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가정원, 기업혁신파크는 정부 예산확보와 앵커 기업 유치를 위한 단체장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날 오후 거제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박 시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부덕으로 실망을 끼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2년 3개월 동안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거제시가 행복하고 세계적인 도시가 되도록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회견 직후 거제시는 지방자치법 제124조에 근거해 정석원 부시장 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정 부시장은 “엄중한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모든 공직자가 하나 돼 그간 추진해 온 주요 시책들이 공백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간부 공무원 긴급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하며 “어려운 시기를 다 함께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