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는 구멍에 들어가길 좋아한다. 이 습성을 이용한 낚시법이 ‘문어방’으로 불리는 단지를 덫으로 쓰는 것이다. 문어는 단지에 갇히면 빠져나오지 못한 채 제 살을 뜯어 먹다 죽는다. 사람이 비슷한 곤경에 빠지는 게 일본의 ‘문어방’(タコ部屋·다코베야) 노동이다. 일본 홋카이도 개척 때 죄수를 데려가 감금 상태에서 노역을 시킨 데서 연유했다. 일본어 사전은 ‘문어방의 문어처럼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고 뜻을 풀이하며 동의어로 ‘감옥방’을 꼽고 있다.
이 비인간적인 행태는 훗날 한반도에서 끌려간 징용자 강제 노역으로 재연됐다. ‘문어방’이 징용공 수용소로 부활한 것이다. 우리 정부의 2006년 ‘강제동원피해조사’에서도 탄광, 터널·발전소 공사장에 끌려간 조선인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중노동에 투입됐고, 군대식 기숙사에 감금됐다는 증언이 숱하게 나온다. 일본 관리자들은 조선 사람을 ‘다코’(문어)로 부르며 조롱했다. 부산 남구 대연동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는 당시 탄광과 ‘문어방’ 모형이 전시돼 있다. 입간판에 적힌 피해자의 증언을 읽다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다리가 잘렸다, 손이 잘렸다, 어디가 깨졌다…. 성한 사람은 몇 명 안 남았어.”
문제는 군함도와 사도광산처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부(負)의 역사’ 탈색 과정으로 변질된다는 점이다. 강제 노역의 아픔은 온데간데없고 자랑스러운 근대화 유적지만 남는다. 참사 현장이 윤색된 뒤 관광지로 미화된다면 피해자와 유족의 심정이 어떻겠나. 우리 정부는 유네스코 등재에 찬성해 주고 뒤통수를 맞는 외교적 참사를 되풀이했다. 온 국민이 참담함을 느끼는 대목이다.
사도광산 기념관에 왜 ‘문어방’ 노동 증언과 전시물이 없을까. 이 허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전쟁 기간 중 강제 노역은 일본만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등재에 한국의 동의가 필수인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는 참혹했던 기억을 후세에 전달하도록 일본에 분명히 요구했어야 했다. 그 책임을 외면한 결과, 일본은 역사 인식의 일탈을 거듭했다.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정부의 접근법은 되레 한일 관계 왜곡을 부른다. 불필요한 외교 마찰과 국민 감정 충돌을 초래해서다. 한일 양국에 미래 지향적인 관계 정립은 중요하다. 다만, 아직까지는 과거의 진실을 전하려는 노력과 인정하는 용기 사이에 긴장 관계가 필요하다. ‘문어방’ 없는 사도광산이 주는 교훈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