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만 나면 골동품 가게나 카메라 판매점을 찾아 좋은 물건을 얻었지요. 돈이 좀 생기면 정품도 사고….”
부산 금정구 장전동 한 골목. 세월이 묻은 상가와 주택 사이로 이층집이 자리하고 있다. 담 낮은 울타리와 1m 크기의 대문으로, 들어가 보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은 유봉림(74) 씨가 일과를 보내는 곳이다. 1층은 평범한 가정집이고 2층과 지하공간은 각종 카메라와 장식품, 특별한 음향 기기가 꽉 차 있어, 작은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 공간이 특이한 점은 건물 2층과 1층 사이의 계단까지 카메라 100여 대와 기록 사진, 사진 현상 장소, 음반 1만여 장과 3D 음향기기로 채워져 있다. 또 2층 공간이 협소해 지하공간까지 다 수집물로 깨끗이 정리 정돈돼 있다.
수십 년간 유 씨가 수집하거나 직접 만든 비용만 해도 무려 1억 원이 훌쩍 넘는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에서 별난 수집가로 변신해 주변에서 전문가는 아닌데도 뭐든 잘해 만능 ‘맥가이버’로 알려져 있다.
카메라에 미친 아이, 음반에 미친 남자, 음향 기기에 미친 중년 등으로 어릴 때부터 모으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고 한다. 유 씨의 아내는 이런 남편이 집을 골동품 가게로 만드는 것 같아 처음에는 한사코 수집을 말리다 그의 열광적인 모습에 어쩔 수 없이 어느 날 2층을 통째로 알아서 하라고 맡겼다고 한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할 때부터 골동품, 사진 확대기 등을 모았다고 한다.
20대는 요가에 빠져 육군 공병대 복무 중 군단장에게 요가를 가르칠 만큼 내공과 태권도, 당수도 등 여러 운동에도 섭렵했다고 한다.
그는 1975년 ‘생활경제사’ 잡지 사진기자로, 부산발전연구원 시스템 연구원, 동국제강 안전관리자,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행사 촬영, 사진 강좌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카메라에 대한 애착이 집요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카메라를 좋아했습니다. 카메라의 원리에 착안해 종이와 렌즈로 옛 카메라 조리개에 렌즈를 꽂아 인화 확대기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20대부터 틈틈이 수집해 온 카메라와 작품 사진이 그의 반세기 카메라 인생을 말해주고 있다.
유 씨가 처음 카메라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그는 카메라의 기능과 효능을 찾아내는 촉각이 유난히 발달했다. 오래전부터 촬영한 사진에다 음악까지 추가해 동영상을 만들다 이젠 오디오 메커니즘을 연구해 3D로 고화질의 동영상과 오디오까지 활용했다. 2층 방 세 곳에 각각의 오디오 시스템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즐긴다.
“디지털 카메라 등장에 이어 고화질 카메라가 내장된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10년 전 스튜디오를 정리했지만 지금도 옛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 씨는 또 노래가 좋아 7년간 남구에서 ‘유림사’ 레코드 가게를 운영했다. 나훈아가 부른 옛 가요 등 1430곡, 이미자 800곡, 조용필 700곡 등 알려지지 않은 노래까지 찾아 틈틈이 듣고 좋아하는 지인에게 곡을 선물하기도 한다.
“노래가 좋아 자주 듣다 보니 일찍부터 음반에 관심을 두게 됐고요. 지금 LP음반만 1만 2000여 장을 소장하고 있지요.”
직장인이 됐으나 이를 포기하고 나와 사진과 음반에 취미가 아닌 수집에 돌연 뛰어들었다.
“늘 관심을 뒀던 분야입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자신감은 넘칩니다.” 취미가 결국 직업으로 됐다.
그가 고집하는 수집 철학이 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간 아무 가치 없는 물건들을 모으고 보관해 오며 가정에서, 일에서 여러모로 혼란을 겪던 중년에 이르러 나 자신을 새삼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수집에 강박적으로 몰두하게 됐는지, 수집을 통해 과연 어떤 의미를 얻으려 했는지 의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 애씁니다.”
과거 회상과 수집에 관한 생각과 일상의 사물들에 애정 어린 마음을 찾는다고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갖은 고생을 하며 진품명품을 모으는 재미는 아는 사람만 알기 때문입니다. 한 점 한 점의 수집 과정을 따지고 보면 제 모든 인생이 담겨 책으로 남길 정도입니다.”
글·사진=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