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수의 과기세] 챌린저호 사고의 교훈을 찾아서

입력 : 2025-02-18 18: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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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

1986년 1월 27일 밤,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과 로켓 추진기 설계·제작 업체인 모턴 티어콜사는 원격 회의를 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를 발사할지 여부를 놓고 긴급히 소집된 회의였다. 회의에서 티어콜의 몇몇 엔지니어들은 챌린저호 발사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오링(O-ring)의 성능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되었다.

오링은 주 엔진에 부착된 두 개의 로켓 부스터를 조립하기 위해 끼워 넣은 부품이다. 만약 오링이 부식하여 복원력을 잃어버리면 마디 사이를 밀봉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그 결과 고온의 가스가 새고 저장 탱크에서 연료가 점화되면서 전체적인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당시에는 오링의 온도가 53F(11.7℃)가 되면 누출이 발생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었으며, 이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누출이 더욱 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챌린저호 발사 때 예상된 기온은 26F(-3.3℃)였고, 오링의 온도는 29F(-1.7℃)로 계산되었다.

일탈의 정상화 시정 안 돼 결국 참사로

위험 요소 무시한 제주항공 사고도 유사

국내 기반 시설 정비·관리 신경 써야

나사는 챌린저호의 성공적인 비행을 간절히 원했다. 많은 예산이 소요된 우주왕복선 사업의 성과를 보여주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챌린저호 발사일 저녁에는 레이건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계획되어 있었다. 티어콜의 메이슨 부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은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나사와 티어콜은 챌린저호를 발사하기로 결정했다. 원격 회의가 잠시 중단된 사이에 메이슨은 공학 부서의 책임자에게 “공학자의 직함에서 벗어나 경영자의 입장이 돼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 날, 챌린저호는 발사된 지 73초 만에 폭발했고, 7명의 우주비행사가 목숨을 잃었다. 챌린저호 사고는 비극적인 인명 손실뿐만 아니라 수백만 달러의 값어치가 있는 장비를 파괴시켰으며 나사의 명성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 사회학자 다이앤 본은 〈챌린저호 발사의 의사결정〉이란 묵직한 연구서를 내놓았다. 그녀는 ‘엔지니어와 경영자’ 혹은 ‘영웅과 악당’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는 챌린저호 사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신에 본은 생산 위주의 문화(culture of production), 구조적 비밀주의(structural secrecy), 일탈의 정상화(normalization of deviance) 등에 주목했다. 생산 위주의 문화는 빡빡한 스케줄을 이유로 들어 발사를 강행하는 관행을 뜻하며, 구조적 비밀주의는 현장의 의견이 상부로 전달되면서 중요한 부분이 축소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본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내세운 것은 일탈의 정상화였다. 이 개념은 일탈을 ‘허용할 만한 위험’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생겨나는 조건을 수정하지 않는 경향을 의미한다. 일탈의 정상화가 계속되면 일탈의 범위 자체가 확대됨으로써 결국 커다란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실상 오링은 시험 비행에서도 계속 문제가 되었다. 24번의 시험 비행 중에 7번이나 오링의 부식이 발견되었다. 다만 오링 두 개가 모두 부식된 경우는 없었고, 하나가 작동하지 않으면 다른 하나가 이음새를 지탱해 주었다. 오링의 부식은 처음에 심각한 일탈처럼 보였지만 점차 정상적인 위험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일탈의 정상화 과정을 거쳐 챌린저호가 발사되었는데, 두 오링이 모두 손상되면서 크나큰 참사로 이어졌다.

지난 연말에는 우리나라의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했다. 아직 공식적인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고의 원인을 두고 조류 충돌, 콘크리트 둔덕, 무리한 운항 일정 등이 거론되었다. 항공사의 정비사들이 인력 부족으로 인해 매우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렸다는 폭로도 있었다. 이 중에서 조류 충돌을 제외하면 모두 일탈의 정상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콘크리트로 둔덕을 만든 것, 무리한 일정으로 운항을 계속한 것, 충분한 정비 인력을 확보하지 않은 것은 모두 위험의 요소를 증가시키는 일탈인 셈이다. 이러한 일탈을 시정하려는 조치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사고의 가능성은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

보다 거시적인 맥락에서는 우리나라에 오래된 기반 시설이나 산업시설이 적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설치되었던 시설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설치하는 일에 못지않게 오래된 것을 정비하고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새로운 것에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오래된 것을 보살피는 데는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어르신 틀니, 수리, 유지, 관리’라는 지하철 광고와 마주쳤다. 한 사람의 틀니에도 투자가 필요한데, 많은 사람들의 안전과 직결된 시설 관리에는 더욱 큰 노력을 쏟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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