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책 읽는 도시’ 생태계가 꾸려지고 있다. 부산 전체에 500개에 육박하는 작은 도서관이 생겼다. 사실상 동네마다 도서관이 있는 셈이다. 지자체들은 해변, 광장 등 지역 특색을 살린 도서 축제를 만들어 책 읽는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도 이색 책방이 속속 들어서며 시민과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에서 영업 중인 북카페 ‘두두디북스’는 출입문을 아예 책장으로 만들었다. 골목에 들어서 책장을 밀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독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마치 추리 소설 속 비밀 공간으로 들어서는 느낌을 준다. 어느새 시민과 관광객에게도 입소문이 났다. SNS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곳’으로 소개된다. 광안리에 놀러왔다 우연히 방문했다는 김 모(29·금정구) 씨는 “북적이는 해수욕장 옆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책을 읽는다는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여러 지자체들도 독서 도시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다. 부산 남구청은 올해 상하반기에 청사 앞 잔디 광장을 열어 야외 도서관을 운영한다. 광장에 ‘빈백’ 등을 놓고 책을 읽고 싶은 주민들에게 이용토록 할 예정이다. 해운대구청은 장산 대천공원에 ‘숲속 책방’을 운영 중이다. 울창한 숲 속에서 책을 즐길 수 있어 이용 주민이 많다는 게 해운대구청 관계자 의 설명이다.
지난해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수영구청 주최로 열린 ‘제1회 광안리 해변도서전’은 큰 인기를 끌었다. 수영구 최대 장점인 해수욕장을 독서와 결합시킨 축제였다. 구청 측은 해변에 책을 읽는 공간을 열고, 지역 출판사나 서점 관계자를 불러 각자의 독서 취향을 반영한 책을 소개했다. 〈오늘 가장 빛나는 너에게 주고 싶은 말〉의 저자 장은연 등 작가 12명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도 큰 인기였다.
지자체들의 독서 장려 열풍은 지난해 부산시민공원에서 열린 ‘잔디밭 도서관’ 영향이 컸다. 잔디밭 도서관은 부산시설공단이 지난해 5월 2일부터 35일간 개최한 행사다. 시설공단 측은 부산시민공원 하야리아 잔디 광장의 공간에 주목했다. 시민들에게 날씨 좋은 날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고 소풍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내놓은 것이다. 시설공단에 따르면 잔디밭 도서관에는 35일 동안 4만 9000여 명이 찾았다.
부산시민공원 관리팀 관계자는 “부산시민공원 개장 10주년 기념으로 잔디밭 도서관을 개최했다”며 “인기가 너무 좋아 올해는 기간을 늘려서 개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1박 2일 캠프도 열린다. 21일 수영구 금련산청소년수련원에서 1박 2일로 열리는 ‘별빛 독서 캠프’다. 부산 초중고 학생들은 부모님과 함께 캠프에 참여해 책에서 나온 요리를 실제 만들거나 좋아하는 책 등장 인물을 스티커나 키링 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부산을 ‘독서 도시’로 이끄는 데에는 부산시도 앞장서고 있다. 부산시는 ‘부산의 첫인상은 책 도시’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민들이 책 읽기 쉬운 환경 조성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골목마다 만들고 있는 작은 도서관이다. 시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에는 작은 도서관이 모두 486곳이나 생겼다. 작은 도서관은 2022년엔 404개였는데 2년 사이에 82개나 늘었다.
시는 또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독서 장려에 나서고 있다. 시는 올해 5~6월과 9~10월에 사하구 다대포해수욕장과 수영구 민락수변공원 등지에 야외 도서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독서 문화 축제’의 여러 프로그램 중 하나로 바다라는 장점과 독서의 즐거움을 결합,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시민들이 도서관으로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책을 시민들 곁으로 보내겠다는 시도이기도 하다.
부산시 창조교육과 관계자는 “3000~4000권 정도를 야외 도서관에 배치할 계획”이라며 “특정한 주제나 상황에 맞춰 책을 구성, 추천하는 것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출판업계는 전국적으로 도서 행사가 자주 생기면서 부산도 이러한 흐름에 따라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행사에서 지역 작가, 출판물 등과 연계할 방안도 궁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 배은희 협회장은 “바다 등 부산의 지역적 특색을 보여줄 수 있는 곳에서 행사가 이뤄지면 아무래도 책이 노출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며 “부산은 출판, 작가 등 인프라와 인적 자원이 풍부한 곳이니, 지역에서 생산된 출판물, 지역 서점, 지역 작가 등이 행사에 함께하면 더욱더 특색 있는 도서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