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향이 그리웠다. 자유롭게 갈 수 없어 더 그리웠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는 역사적 비극을 맞는다. 그의 고향은 명사십리 해변으로 유명한 함경남도 원산이었다. 고향을 떠나 남쪽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하루아침에 실향민이 됐다. 1946년 부산 해운대 송정을 찾아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이어진 백사장을 거닐던 그는 고향 해변에 대한 상념에 잠긴다. 그때 바닷가에서 굴을 따던 아낙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오고, 자연스레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는 이날 송정에서의 기억과 느낌을 동시에 담았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아동문학가 한인현(1921~1969)이 지은 동시 ‘섬집아기’는 집에 둔 아기 걱정에 일을 끝내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뛰어가는 어촌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모정의 애틋함을 전한다. 영화를 보는 듯 어촌의 서정적인 장면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한인현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었다고 한다. 그에게 명사십리 해변은 유년기를 보낸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섬집아기’의 탄생 배경엔 이젠 만날 수 없는 어머니와 고향 해변에 대한 작가의 깊은 그리움이 숨어있다. 특히 명사십리 해변과 닮은 백사장을 가진 데다 원산처럼 탁 트인 동해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송정 해변은 그리움을 발화시킨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섬집아기’ 동시의 고향은 송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동시는 1950년 이흥렬 작곡가가 곡을 붙이면서 동요로 탄생한다. 이후 국민 애창곡으로 자리매김했다.
송정동 주민들이 송정해수욕장 죽도공원 인근에 ‘섬집아기’ 시비를 세운다고 한다. 최근 시비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송정동마을기금관리위원회도 시비 건립을 위해 예산을 지원한다. 고인의 유족으로부터 시비 건립을 돕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이 시비는 한국을 대표하는 동시이자 동요인 ‘섬집아기’가 78년 전 송정 해변에서 잉태되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섬집아기 시비가 강대국 신탁통치에 의한 강제적 국토 분단, 6·25전쟁으로 인한 분단 고착화 과정에서 실향과 피란, 강제 이산을 겪었던 이 땅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는 상징물이 되기를 소망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천영철 기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