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한국의 MAGA를 외쳐줄 정치인은 어디 있는가

입력 : 2025-04-02 20: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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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는 걸 대서특필한 신문을 본 기억이 있다. 그땐 자유무역의 개념이 뭔지도 모를 중학교 1학년 때라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사건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엄청난 것이었다.

글로벌 분업 체계에 편입된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각국의 기업들이 값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 제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세계 제조업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까지만 해도 6%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2010년엔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더니 2021년 30.9%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미국의 비중은 25%에서 16.3%로 축소됐다.

미 트럼프 “제조업 부활, 중산층 복원”

현대차 관세 피해 미국에 31조 원 투자

현지 생산 늘면 한국 일자리 위협 받아

정치권, 수출 물량 빼앗겨도 관심 없어

기업들 해외서 홀로 분투·서민 삶 후퇴

추락하는 국민 지켜줄 지도자 아쉬워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는 건 그보다 상위 레벨에 있는 국가들에서 그만큼 많은 공장이 빠져나갔다는 걸 의미한다. 일자리는 당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미국만 해도 중국이 WTO에 가입한 뒤로 10년간 제조업 일자리 약 600만 개가 없어졌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중국의 값싼 인력에 대적할 수 없었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쓰나미 앞에 중산층 노동자 가정은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동부에선 월스트리트의 금융기업들이 돈을 쓸어 담고 서부에선 실리콘밸리의 혁신기업들이 나날이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공업지대들은 쇠락해 가기만 했다.

그런 시대였기에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그가 처음 당선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이벤트가 일시적인 이변일 거라고 보았다. 아니었다. 이후의 사건들을 보니 그의 당선은 세계가 갈 수밖에 없었던 길목에 놓인 이정표 같은 것이었다. 공장이 떠나며 일자리를 잃고, 그나마 남은 일자리마저 밀려드는 불법 이민자로 인해 위협받는 사람들의 상실감과 분노가 서구 선진국들을 뒤흔들었다. 기성 정치권은 정서를 간파하지 못했다. 그것이 2010년대 중반부터 계속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돌풍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지지층은 대체로 비슷했다. 블루칼라, 서민, 지방. 모두 세계화가 가져온 번영에 소외된 이들이다.

얼마 전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31조 원을 투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8년까지 완성차를 비롯한 부품·철강 등의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고 자율주행·미래항공모빌리티(AAM) 등 신기술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내용이다. 미국 판매량이 수출 물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현대차로선 관세를 피하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국내 일자리다. 미국에서의 생산은 국내 수출을 대체한다. 그에 비례해 일자리는 위협받는다. 부품 등 협력 업체들 역시 따라가거나 현지 업체로 대체될 수 있다. 미국이 5월부터 주요 자동차 부품에도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공장이 떠나면 지역 경제는 흔들린다. 전라북도 군산의 경제도 2018년 한국GM 공장이 문을 닫은 뒤 큰 침체를 겪었다. 당시 근로자와 협력업체 직원 3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 덕분에 먹고 살던 ‘사장님들’도 덩달아 폐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군산의 제조업 생산액은 공장 폐쇄가 있기 전인 2017년엔 3조 3258억 원이었지만 공장이 문을 닫고 코로나19까지 겹쳤던 2020년엔 2조 7085억 원까지 감소했다. 공장 폐쇄 여파는 7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는 자국민들에게 외국으로 나간 공장을 불러들여 쇠퇴한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무너진 중산층을 복원하겠다고, 그걸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로 표현되는 이 정신은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도 계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바이든이 집권했을 때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지 않았나. 차이가 있다면 보조금으로 구슬리느냐 관세로 협박하느냐 하는 정도일 게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미국에는 우리의 반도체와 배터리와 철강, 심지어 빵 공장까지 지어졌거나 지어질 계획이다.

이 엄청난 뉴스들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이것과 관련해 별다른 반응이 없다. 대한민국 국회는 트럼프가 우리 수출 물량을 어마어마하게 빼앗아 가는 것보다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 의결정족수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 보인다. 누구 하나 공장이 떠나는 걸 붙들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정치권이 지난한 탄핵심판 공방을 벌이는 동안 기업들은 해외에서 혈혈단신으로 싸우고 있고 그럴 힘마저 없는 서민들은 맥없이 삶의 후퇴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분절되는 세계의 크레바스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줄 정치인은 어디에 있는가. “차라리 트럼프 같은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정치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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